관계의 종말에 대한 직관적 깨달음
결혼식에 초대를 받으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설렌다.
미국에서는 소중한 지인만 초대받는다는 점에서, 상대에게 나름 의미 있는 존재였음을 확인받는 느낌이라 결혼식에 초대를 받을 때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대신, 무조건 꼭 가야 한다)
처음 가는 낯설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이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한 마음으로 축하와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그런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 그런 분위기에서 술에 기분 좋게 취해 사람들과 같이 마음 편히 한 없이 나를 내려놓고 (이젠 못한다, 더 이상은 naver…) 춤을 추며 노는 것도 좋아한다. 클럽에서는 아무리 편하게 신나게 놀아도 아무래도 남녀들의 성적 긴장감과 유혹, 경계가 동시에 난무하는 일종의 “사냥터”라 뭔가 알 수 없는 미세한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결혼식은 그런 게 없어서 더욱 편안하고 “순수한” 신이 난다. 여기에 만약 DJ가 취향저격의 노래들을 틀어준다면, 그날은 마치 분위기 띄우러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처럼 노는 거다.
나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결혼식을 참석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의 가까운 친구들의 결혼식을 하나도 참석하지 못해 본 것이 나의 인생의 큰 아쉬움 중 하나이다. 나의 결혼식 참석 경험은 미국내에서만으로 국한된다. 미국의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며, 식을 올리고 바로 이어 식사, 가까운 지인들의 축사 및 짧은 공연, 그리고 음주가무가 동반되는 피로연으로 이어진다.
피로연의 초반부에는 보통 신랑의 제일 친한 친구 (Best man)와 신부의 제일 친한 친구 혹은 자매 (Maid of honor)의 축사가 있다. (경우에 따라 여러 명이 할 때에도 있다. 웬만하면 비추다, 분위기 쳐진다) 98%의 확률로 best man 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빙의되어 신랑을 놀리고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웃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maid of honor 은 이쁘게 시작하고 감정적으로 가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마치 미리 짠 것처럼, 신부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경우에 따라 심하게 오열하는 분들도 있다) 이건 마치 들러리학개론이 있다면 필수항목인 것처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양상이다.
언제나 의문이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울까? 친구의 결혼이 슬픈가? 친구의 결혼이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런가? 친구를 신랑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우정이 변한다고 느껴지는 건가? 눈물이 없는 친구는 maid of honor를 안 시켜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남들이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에 반면, best man을 비롯한 신랑의 들러리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도 best man을 한번 해봤지만, 웃길 생각, 신랑 골탕 먹일 생각, 분위기 띄울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보통 Best man의 머릿속은 웃기지 못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 밖에 없다. 이 결혼식이 끝난 이후 친구와의 관계에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자신이 무엇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나도 안다, 이는 사회적 기대와 역할이 적용돼서 그렇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신부의 친구들이 감정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표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있고, 신랑의 친구들은 결혼식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재미있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기대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Maid of honor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날 이후로는 더 이상 신부를 (가장 친한 친구를)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불러내고, 밤새 수다를 떨고, 자잘한 일상으로 채우던 시간이 이제는 사라진다는 것을. 그만큼 우정의 일부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고,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내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하나의 관계의 종말이 왔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관계의 종말에 대한 직관적 깨달음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인 것이다.
Best man은 한참 뒤에 뭔가 달라진 유부남이 된 친구를 보고 깨닫게 된다. 나와 이 친구와의 관계가 그전과는 달라졌고, 더 이상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나도 그때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친구가 결혼을 하면 그 친구와 나 사이의 관계는 변화가 찾아온다. 예외 없이 항상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마음 편히 연락해서 수다 떠는 것도 힘들어지고 시간 내서 놀기도 쉽지 않아 진다. 특히, 친구의 배우자와 결혼하기 이전에 충분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다면 더욱 어려워진다. 결혼한 친구와 나의 관계는 더 이상 1:1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1이지만, 친구는 2가 된다.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친구뿐 아니라, 나 역시 친구의 배우자의 눈치를 어느 정도 봐야 하고 심기를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 자칫하면 친구를 전설의 포켓몬으로 진화시켜 더욱 못 보는 수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긴다면,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며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자. 이것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결혼을 하고 몇 해가 지나 보니 싱글일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이러한 친구 관계에 대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 많다. 모든 삶은 수많은 다양한 디테일이 있지만, 비슷한 점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외도 많겠지만, 두 가지만 적어보겠다.
이건 첫 번째 레슨, 좋은 건 너만 알기. 미혼남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유부남이 된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미세한 듯 하지만 꽤나 큰 차이로 변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진화를 하게 되어 나의 인생의 포커스는 내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최우선인 마음가짐으로 어느새 변했다. 의도와 무관한, 생각해 보면 본능적인 것 같다. 이로 인해, 친구들이 싫어지거나 마음이 멀어진 것은 아닌데 친구들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사라졌다. 싱글일 때에는 마음 통하는 친구와 아무 때나 만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책하고 수다 떠는 게 큰 낙이었는데 그것에 대한 갈망이 많이 없어졌다. 물론, 언제든 하게 되면 즐겁고 재미있다. 하기 싫은 게 아니다. 단지, "해야겠다는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친구를 덜 찾는다.
둘째, 남자의 삶은 결혼 이후로 설명하기가 몹시 복잡해진다.
미혼일 때의 나는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나에 대한 정보는 투박하고 직선적이었다. 마치 on/off switch 같았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안 하거나, 이렇게 두 가지 옵션 밖에 없었다, 아주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의 삶에는 여기저기서 layers들이 수없이 추가되고 남자의 삶에 대한 정보는 단순한 on/off switch에서 더 복잡하고 정교한 equalizers들이 추가가 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turn table controller set처럼 될 수도 있다. 갑자기 조절해야 되는 정보량이 늘어나고 어떤 정보를 단순히 on/off가 아니라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하는 식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한번 정해지면 유지되는 고정값이 아닌 계속 변경되는 값이다. 끊임없이 믹싱해야 한다.
타고난 성격이나 성향상 이런 접근이 편안하고 익숙한 남자도 있겠지만, 이런 쪽으론 단순하게 살아온 상당수의 남자들에게 이 수정된 setting은 버겁게 느껴진다. 평생 더하기 빼기밖에 안 해본 사람에게 갑자기 오늘부터 미적분해봐 하면 어쩌겠는가. 다수의 남자들은 당연히 적응하기 매우 어렵다. 어디 가서 뭘 말해도 될지 안 될지 잘 모를 땐 어떡하나? 그렇다,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다. 가장 안전한 세팅은 "음소거"다. 당연하게도 친구 입장에서는 예전에 비해 말수가 줄어든 남자가 낯설게 느껴지고 그 전과 묘하게 달라진 모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남자는 이것에 대한 시원한 설명을 해주기엔 이 시스템이 너무 난해하다. 자신도 이해와 적응도 안된 것을 오해 없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저 할말하않이다.
친구의 결혼은 친구와 다년간 쌓아온 소중한 순간들이 그 전과 같이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식과도 같다. 친구와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것을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간관계는 나이 들수록 더욱 정교함을 요구받기에 어려워지고 조심스러워진다. 간단하고 재미있기만 했던 친구와의 관계도 달라진다. 우리는 익숙한 것이 끝이 나는 것이 두렵지만, 많은 경우의 종말이나 해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창조는 친구와의 관계가 새롭게 재편성되는 창조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새롭고 정교한 우정의 판을 짜야할 때가 온 것이다. 결혼식에서 친구의 눈물은 이렇게 한 관계의 종말과 시작을 축복하는 눈물이지 않을까.
이렇게 쓰고 보니, 결혼식날에 가장 울어야 할 사람은 best man이 아닌가 싶다. Best man이 훌쩍거리면서 축사 중 울음을 최대한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신랑을 놀리는 개그를 하고, 많은 사람들은 웃는 와중에 신랑은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결국 best man과 같이 눈물을 흘리고, 축사 내용이 적힌 종이의 삐뚤삐뚤 적힌 글씨는 눈물로 얼룩지고… 약간 블랙 코미디스러운, 슬픔과 기쁨과 감동과 찝찝함이 공존하는 장면.
결혼이라는 깨알 같으면서도 장대한 대하서사드라마의 시작에 아주 걸맞은 장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