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공간이 삶을 바꾸는 순간

윤시윤과 화장실, 그리고 공간의 의미

by urbansubstances

최근에 TV 방송 미우새 (미운 우리 새끼)를 보았다.

윤시윤 배우가 몇 달 전부터 새로운 미우새로 등장했는데, 예전부터 마음이 갔던 배우라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일상은 거의 결벽과 강박의 연속 같았다: 청소, 정리, 식단, 복장, 스케줄, 자기 관리 등등. 처음엔 그냥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이겠거니 했는데,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느낌이라기보다는, 뭔가 “열심히”, "절실하게", “집요하게” 애쓰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강박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조금 지나쳐 보이는 모습은 뭔가 그는 어떤 사연이 있으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최근 방송에서 그 단서가 드러났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떠난 몽골 여행 중,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살던 시절, 세 가구가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있는 단칸방에서 지내다가 처음으로 자기 집만의 화장실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큰 행복을 느꼈음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그들만의 화장실이 생긴 것이 꿈같고 십몇 년 만에 내가 이루었다는 감격스러운 마음에 변기를 안고 벽에 기대서 한참 앉아있었다고 했다. 윤시윤은 그 기억 때문에 지금도 화장실의 청결에 유난히 마음을 크게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힘들게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 앉아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좋은 화장실을 쓸 만큼은 이뤘구나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고.

'미우새' 윤시윤. SBS 방송화면 캡처

굉장히 짠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의 집에서의 모습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며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

화장실은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공간이다.

더럽지만 깨끗해야 하고, 잠시 개인적이지만, 곧 다시 공적이 되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며, 몸의 불필요한 것을 비우는 해소의 공간,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사용자가 다시 새롭고 깨끗해지며, 극도로 사적이고 은밀한, 오직 ‘나’만 존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화장실은 우리의 감정에 아주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생과 필요와 기능이 얽히고설킨, 작지만 복잡한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짧은 시간에도 강렬하게 우리의 뇌와 감정을 다방면으로 자극할 수 있는 강력한, 입체적이며 뭔가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뿜뿜 되는 마약적인 느낌의 공간이기도 하다.


급하게 필요할 때, 눈앞에 발견한 화장실 간판의 반가움.

반가운 마음으로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악취와 안구테러의 절망.

휴지가 없음을 발견했을 때의 긴박함과 순간적으로 지력을 상승시켜 주는 엄청난 두뇌 회전.

제발 누가 도와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신앙심의 일시적 상승.

옆칸의 모르는 이의 따뜻한 배려로 휴지를 얻게 되었을 때의 감동과 인류애.

반대로 청결하게 관리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안도와 감사함.

화장실은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랜덤 박스 같은 공간이며, 우리는 그 공간에 입장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화장실의 디자인과 디테일 역시 우리의 감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칸막이의 디자인, 칸막이와 칸막이 문 사이의 틈, 칸막이의 잠금장치, 칸막이의 높이, 칸막이 하단과 바닥과의 거리, 조명의 밝기, 수압의 세기, 비누의 향, 손 건조 방식, 바닥과 벽타일의 색과 청결 정도, 현재 같이 이 공간에 있는 존재의 유무, 장애인 접근성이 고려되었는지 등등. 이 작은 공간 하나에도 우리의 감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공간의 경험을 굉장히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디자인

공간의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

윤시윤 모자의 대화를 보며 화장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들에게 화장실은 단순한 편리와 기능적 공간이 아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화장실에서 따지는 세세한 기준들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가 있었다:

‘내 것’이라는 소유감, ‘안전하다’는 확신, ‘이제 괜찮다’는 안도감.

결핍의 시절을 견뎌내고 처음 얻은 그들만의 공간이 주는 성취와 자부심이었다.

그들에게 화장실은 위안을 주는 안정의 공간이었고 행복의 증거였던 것이다.

아주 작고 평범해 보이는 공간 하나가 한 가족에게는 큰 위로를 주었다.

한 가족의 성취와 자부심의 공간

공간은 사용자를 통해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벽, 바닥, 천장, 가구, 마감재 같은 물리적 형태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공간은 그것을 이용하는 존재가 의미를 불어넣을 때 비로소 살아난다.


화장실이 윤시윤 가족에게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삶의 상징이 되었던 것처럼, 모든 공간은 사용자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필요와 결합하며 진짜 ‘공간’이 된다. 설계자는 형태와 사용자의 경험을 고민하지만, 그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용자다. 사람뿐 아니라 그곳을 점유하는 모든 생명과 사물들까지도 공간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공간 설계는 단순히 멋있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서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가, 왜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 공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다시 빚어내는가 등의 고민은 필수적이다.


화장실이라는, 종종 당연하고 사소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를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은 내가 이번 방송에서 깊게 느낀 점이다. 그리고 역시 공간의 의미에서 형태는 생각보다 부차적일 수도 있다는 것.


윤시윤이 화장실의 청결에 예민한 이유는,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한 몸짓일지 모른다. 그 공간이 주었던 안정감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어린 시절의 그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경험과 의미는 그렇게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닐까.


과거의 경험을 가슴 깊은 곳에 안고 치열하게 성장해가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I wish him th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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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장면 최키라웃: https://youtu.be/DE139IOkRwE?si=0NIH11bxP68Zvzx8


+ 미우새 관련 한마디: 다년간 시청하던 방송인데, 최근 들어 방송의 방향을 살짝 튼 것 같다. 과거에는 웃긴 에피소드가 더 지배적이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감동과 눈물 코드가 2/3 정도로 늘었고 웃긴 에피소드가 상당히 줄어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일요일 저녁에 보는 거라 다운되고 무거워지는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웃긴걸 더 보고 싶긴 하나, PD의 선택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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