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바에서 시작된 바이럴 로맨스

단편소설

by urbansubstances

에리카는 뉴욕 어퍼 이스트에서 회계사로 살고 있었다. 매년 세금 보고 시즌엔 샐러드 보울 하나로 하루를 버틸 만큼 일이 우선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작은 강아지와 금융권에서 일하는 애인을 곁에 두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완벽한 뉴요커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다 2020년, 팬데믹은 그녀의 모든 걸 무너뜨렸다.

좁은 원룸에서 격리를 하며 누구보다 가까웠던 애인과의 관계는 어느새 한 없이 멀어져 갈라졌고, 강아지는 자주 찾던 공원에서 누군가 흘린 초콜릿을 주워 먹고 결국 그녀의 곁을 떠나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그해 그녀의 쓰레기통에는 매일 눈물에 젖은 마스크로 가득 찼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사람들이 더 이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을 무렵 그녀는 심적으로 조금씩 회복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데이팅 앱을 쓰며 가벼운 만남들을 가지다 "Hinge"를 통해 데니스를 알게 되었다.


데니스는 역시 에리카와 같은 텍사스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도 비슷한 시기에 텍사스에서 뉴욕으로 왔기에 에리카와 데니스는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았다.


모든 잘 돼 가는 남녀 관계의 시작은 그렇듯 대화는 물 흐르듯 끓이지 않고 이어졌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며칠 내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를 대화를 이어갔다.


둘이 매치가 된 시기는 3월 말이었고, 회계사였던 에리카는 세금보고 업무로 인해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일이 언제나 우선이었던 에리카는 어쩔 수 없이 데니스와의 대화에 소홀해졌고, 둘의 관계는 결국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연락마저 흐지부지 끊기게 되었다. 이 관계에 아직 큰 무게를 두지 않았던 두 사람은 각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6월 어느 점심시간, 에리카는 평소처럼 사무실 근처 그린 바이트로 향했다. 늘 주문하던 그린 베이스에 치킨을 추가한 샐러드를 기다리며, 그녀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서리 테이블에 앉은 남자의 뒷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갈색 머리, 넓은 어깨, 그리고 그가 입고 있던 네이비 셔츠까지. 데이팅 앱 프로필 사진에서 봤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몇 주 동안 메시지만 주고받았을 뿐,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에리카는 주문한 샐러드를 재빨리 받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갔지만, 내내 그 남자 생각만 났다. 점심을 먹는 내내 집중할 수 없었고, 결국 오후 3시쯤 데니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오늘 점심에 그린 바이트 갔었어?"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혹시 거기 있었어?"


"나도 거기 있었어! 진짜 너였구나. 근데 왜 인사 안 했어?"


"솔직히 말하면... 너인지 확신이 안 섰어. 그리고 좀 어색하기도 하고."


에리카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로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혹시 이제 좀 덜 바빠졌다면 우리 식사 한번 할까?"


에리카는 데니스의 제안을 편안한 마음으로 수락했고, 그들은 며칠 뒤 토요일, 처음으로 대면했다.


메시지로 나눴던 농담들이 실제 목소리로 들리니 더욱 재미있었고, 서로의 몸짓과 표정을 보며 대화하니 훨씬 자연스러웠다.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었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지며 둘은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었다.


1년 후, 데니스는 그 운명적인 그린 바이트에서 에리카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데니스와 에리카 둘 다 충실한 단골이었기에 매장 직원들의 협조를 구하기 쉬웠다. 수완이 좋은 그린 바이트 사장은 이 커플의 스토리가 훌륭한 홍보 효과가 될 것이라 판단했고, 기꺼이 매장을 프러포즈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주었다. 특별 샐러드 메뉴 준비, 직원들의 호응 및 안무 연습에 가게 인스타그램에 올릴 동영상 촬영 팀도 섭외했다.


데니스는 프러포즈 당일날 자연스럽게 에리카의 손을 잡고 매장에 들어섰고, 샐러드 바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반지 상자를 열며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동시에 매장의 조명은 바뀌고, Gloria Estefan의 "Everlasting Love"가 흘러나왔으며 매장 직원들은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폭죽을 터뜨렸다.


에리카는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에 상당히 놀랐지만, 데니스 다운 프러포즈 방식에 눈물 섞인 웃음을 지으며 "YES!"라고 대답했고, 데니스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She said YES!!"


매장 내 다른 손님들 역시 이내 상황을 파악을 하고 모두 손뼉 치며 환호하며 축하해 줬다.


그린 바이트는 이 이벤트를 놓치지 않았다. 이 커플에게 황금색 VIP SALAD BOWL과 $10,000이 미리 충전된 VIP CARD를 커플에게 선물했다. 에리카와 데니스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한, 평생 무료 프로틴을 샐러드에 추가할 수 있는 권한도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폭발적으로 바이럴 되었고, 두 사람은 "샐러드 커플"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밈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샐러드를 먹으며 데이트를 하는 트렌드가 생겨났고, 그린 바이트를 포함한 뉴욕의 샐러드 가게들은 사랑을 찾는 싱글들 덕분에 매출이 수직 상승하는 뜻밖의 호황을 누렸다.


여러 해가 지났다. 에리카는 이직을 했고, 데니스와 결혼하여 브루클린의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지만, 그녀의 지갑 속에는 여전히 조금은 닳은 소중한 그린 바이트의 VIP CARD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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