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밤샘 작업의 결과물
기억은 하나의 고정된 .jpg가 아닌 레이어가 수십 겹 쌓이고 끊임없이 편집중인 .psd에 가깝다.
Photoshop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미지처럼 계속해서 편집되고, 복제되고, 때로는 삭제되며 무한히 덮어씌워지고 재저장되는 심리적 작업물이다.
우리가 어떤 순간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장면은 고해상도의 원본 이미지처럼 선명했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 온도와 공기, 대사와 목소리, 눈빛, 감정과 느낌 등등의 생생한 .raw 파일을 우리의 뇌는 저장한다. 이 장면을 머릿속 포토샵에서 바로 duplicate layer 해서 작업이 시작된다.
작업은 자동적으로 계속 진행된다:
Brightness를 올리고, hue/saturation을 조절하고, filter를 씌우고, contrast를 줄였다가, saturation을 올렸다가, clone stamp 하고, brush 하고 흑백으로 바꾸기도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감정이라는 도구로 끊임없는 수정을 가한다. 마치 밤새 일하는 야심 찬 디자이너처럼, 시키지도 않은 작업을 혼자서 계속한다.
이 바쁜 와중에 원본은 맨 아래로 조용히 밀려 내려가고, 아무도 건드리지도 보지도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조용히 사라진다.
작업창 속 레이어는 점점 늘어만 간다. 수십, 수백 개의 레이어가 층층이 쌓여 무한 scroll을 해야 하는 거대한 파일로 커간다. 하지만 이 모든 레이어들이 항상 켜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레이어들은 '눈' 아이콘이 꺼진 채로 방치되고 잊히기도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이번에도 역시 "알아서", "자기 마음대로" 기억의 details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뒷전에 밀리는 부분들은 레이어를 꺼둔다. 만약 꺼둔 레이어가 사라지기 전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켜놓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load 될 때마다 누적된 레이어들를 merge layers로 수정사항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jpg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시 이 기억이 다시 저장될 때에는 새로운 정보와 감정의 조각들이 추가되어 또 다른 버젼의 .psd로 업데이트된다. 그리고 이 수정된 버전으로 기억에 대한 편집은 계속 이어진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오늘의 내가 어제의 기억을 다시 재해석하여 저장한다. 기억은 그렇게 매 순간 편집되고, 결합되며, 끝없이 재구성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원본과 거리가 멀어지고 내가 알게 되는 것은 가장 맨 위에 떠 있는 레이어, 가장 최근에 통합된 "Final_final_진짜_최종_진짜마지막" 버전인 하나의 모습뿐이다.
꿈은 이 무의식의 정돈되지 않은 은밀한 편집 현장을 잠시 우리가 엿보게 되는 현상이 아닐까.
무의식이 나에게 숨기고 철저하게 뒤에서 작업하는 것을 나에게 들키는 순간일 수도.
나는 꿈에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장면들을 목격하지만, 무의식처럼 많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기에 기묘함과 난해함을 느낀다.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되어 논리도 맥락도 뒤섞여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잠에서 깨서 "이상한 꿈을 꿨어, 근데 잘 기억이 안 나." 라고만 말하게 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오늘도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 왜곡된 이유에 분노하고, 거짓된 감정에 울고, 조작된 장면에 웃는다. 물론 그게 조작되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이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기억이 원본 그대로 유지된다면? 모든 고통이 처음처럼 날카롭고, 모든 상처가 새살 돋기 전처럼 선명하다면,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가끔은 undo 해서 원본을 복구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그런 편리한 기능은 탑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의 몸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활성화해 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기억은 편집이다.
무의식이라는 디자이너가
끊임없이 수정하고 발전시켜 가는
"진행 중인"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 속
주인공이자 관객이자, 동시에 감독이다.
이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우리 각자의 몫이다.
기억은 생각보다 부정확하다. 우리는 정확하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머릿속에서 편집된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1. 기억은 사진처럼 찍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뇌가 재구성하는 이야기이다. 뇌는 save 할 때에도, load 할 때에도 편집을 한다. 이때 기억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감정 상태, 기대와 믿음, 사회적 압력, 시간의 흐름, 다른 사람의 말 등이 있다.
2. 감정은 기억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왜곡도 시킨다. 기억의 디테일은 왜곡되기 쉽다. 시간, 순서, 주변 정보 등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3. 안타까운 점은 기억을 반복해서 load 할수록 기억은 더 '가짜'가 된다. 뇌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을 다시 "덮어쓰기"를 한다. 그래서 많이 생각나는 기억일수록 원본과 멀어질 수 있다. 인간은 기억을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다듬고 공유하면서 타인의 이야기가 덧입혀지거나, 상상한 이미지가 섞이기도 하며 기억은 재구성된다.
4. 완전하게 "순수한" 기억은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Yes, 하지만 감각적 기억 (냄새, 소리, 특정 이미지)은 다른 기억보다 덜 왜곡되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