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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리가 약속을 할 때

[공모전을 퀴어링 02]

by 수환

※ 본 글은 픽션이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단체, 배경 등은 모두 실제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늦은 오전에 일어나니 연락이 와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는데, 잠깐이라도 가능하다면 얼굴 좀 보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한동안 못 보긴 했지, 이상하리만큼. 올해도 얼마 안 남았는데, 다른 애들은 바쁘다 해서… 다 같이 만나면 좋을 텐데요! 하고. 아, 나도 가게 행사 기획 중이라 바쁜데!

제희와 말을 튼 지 오 년은 족히 되었건만, 녀석은 아직도 내게 존대를 하며 미묘하게 거리를 두려 했다. 그래서 나도 엉겁결에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곤 했다. 조심성 없이 행동하다 끝내 무례해지고 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제희의 신중함은 높이 살 만했다. 그래도 가끔은 그 애가 덜 자신다웠으면 했다.


*


제희를 막 알게 되었을 적의 나는, 수도권 대학의 방송영상학과를 휴학하고 케이블 방송국에서 인턴십을 수료 중인 대학생이었다. 말이 좋아 인턴십이지 온갖 허드렛일이 내 업무였다.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송국은 업무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고, 나는 웬 예능 녹화 현장에 말 그대로 ‘던져졌다’. 어차피 학부 휴학생이 뭘 할 수나 있겠느냐만은. 실제로 일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알바보다 벌이도 적었다. 나는 그저 향후 구직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상당히 안일한 생각만으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출연자들을 대기시키다가 카메라 앞에 내보내고 다시 불러들이고, 편집 때 필요한 자료를 챙기고, 촬영 땐 쓸데없는 소음이 잡히지 않게 신경 쓰고 행인이 화면에 잡히지 않게 전전긍긍하는 일을 반년 가량 수행하기.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는 사람이 있어야 방송이 굴러간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저학년이 아니었는데도, 앞으로 이 분야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던 시기였다.

참여했던 예능 프로그램은, 일단은 퀴즈쇼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퀴즈는 허울만 좋게 가져다 붙인 것이고, 정확히는 정답이나 오답을 낸 출연자에게 무언가 미션을 시키며 시간을 때우는 예능 프로의 한 포맷이었다. 많은 예산을 배정받지는 못한 상황 덕에 제작진은 출연진을 무명 연기자,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중소 소속사의 아이돌, 티비에 출연해 보고 싶어서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넣은 일반인들로 채웠다. 그리고 상으로는 자기 홍보 시간을 주었고, 벌로는 막춤 추기나 괴식 먹기 같은 것을 시켰다. 덕분에 이름 모를 연기자가 천만 영화의 명장면을 재연하고, 갓 데뷔한 티를 못 벗은 어린 가수들이 춤을 추거나, 고깃집을 운영하는 일반인 출연자가 촬영장 한복판에서 후식 냉면을 만들어 나누어주는(손님들이 저희 집은 고기보다 냉면이 맛있다고 하세요!) 일들이 한 프로그램 내에서 이뤄지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제희를 처음 만났던 날에도, 나는 출연자들이 자기 분량을 챙기기 위한 노력을 지나치게 하지 않고 촬영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 퇴근하면 캔맥주나 사가야지, 하면서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그때까지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그냥 원래 그렇기에. 문제는 식사 시간이 끝날 때쯤 해서 벌어졌다.

밥을 시켜 먹고 그릇을 버리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보니 지갑이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문제는 그날따라 피디님이 하필 나에게 법인카드를 줬다는 점이었다. 오, 망했다. 인턴 기간이 다 끝나갈 때까지 지각이고 업무 실수고 한 번을 안 하면서 시킨 일 다 쳐내는 괜찮은 막내였는데, 그걸 이렇게 망치네. 분실신고부터 해야겠다. 진짜로 다른 일 찾을까 봐, 그렇지만 지금까지 버텼는데 인턴십 수료도 못 하게 되면 어떡하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스튜디오 곳곳을 헤맸다.

사실 법카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른 내용물이 문제였다. 나는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성소수자 청소년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에 가서 교육 봉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단체를 거쳐갔는데, 그중 몇은 연락이 끊겼고 몇은 새해에나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지만 나는 그 일을 돈 받는 일보다 조금 더 사랑했다. 덕분에 지갑에는 해당 단체의 도무송 스티커가 몇 장 들어있었다. 단체의 로고와 무지개 깃발이 들어가 있는 스티커였다.

스태프 중 누군가가 지갑을 주워 신분증과 스티커를 보고 찾아와 돌려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니 온몸이 차게 식는 것 같았다. 주운 사람이 지갑을 열어보지 않고 바로 건물의 분실물 센터에 맡길 수도 있기는 했다. 그래봤자 접수받은 사람이 지갑을 열어 주인이 누군가 확인을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고, 어느 쪽이나 원하지 않게 소문이 퍼지는 건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출연자 중 하나가 지갑을 주워뒀다가 여기저기 기웃대고 다니는 불쌍한 젊은이에게 건네주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내가 오늘 출연자 대기실에 갔던가? 계약 기간이 거의 끝나가자 방송국에서는 다음 노예를 뽑았고 나는 지금껏 혼자 다 하던 업무를 며칠 전부터 새 인턴에게 조금씩 넘겨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기실을 평소보다 덜 들락날락했지만 이제 가볼 곳이라곤 그곳뿐이었다. 문을 빼꼼 열고 인사를 건네며 혹시 손바닥만 한 검은색 지갑을 못 보셨는지 공손하게 물었지만, 삼삼오오 모여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내젓거나 아뇨, 짧게 답하고는 말았다. 나는 울상이 된 채로 녹화 재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 야, 기주야. 네 후배 어디 갔냐? 지금 시작하는데.

─ 네? 네! 찾아올게요!

망했네. 지갑도 새 인턴 녀석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허우적댈 뿐인 못난 놈. 녹화 시작 직전까지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서 마지막으로 두리번거렸다. 끝이군, 끝이야. 나는 몇 분 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올 미래를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때 누가 내 침울한 어깨를 톡톡 두드렸고, 나는 몸을 돌렸다.

메이크업과 의상을 보니 스태프는 아니고 출연자 중 하나인 듯했다. 곱상한 얼굴에 키는 나와 비슷하고 나보다 네댓 살 어려 보이는 그 애는 내 손에 지갑을 쥐여주었다. 혹시 이거... 네? 찾으시는 거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여가며 연신 인사하는 나에게 그 애는 손을 내저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후배 인턴이 나타나서 그 애에게 말했다. 다다음 무대 준비하세요!

아, 오늘 출연하는 아이돌이구나. 아깐 다른 멤버들만 앉아있었는데 상인지 벌칙인지 수행은 저 친구가 하나 보네. 새 인턴을 따라가는 연예인을 보고 나는 지갑을 열어 슬쩍 봤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법인 카드가 멀쩡히 있었다. 얼른 뛰어가 카드를 피디님에게 반납했고, 그래서 약간의 사고는 있었다 해도 기억에 남을 일 없는 무난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천'의 무대를 보기 전까지는.


*


퇴근길에 나는 천이 소속된 그룹을 핸드폰으로 검색했다. 그의 무대가 녹화 마지막이 아니었다면 아마 온갖 멍청한 짓을 하다 오늘 잘렸을 테지만, 솔직히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사람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한 번 마주하면 그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하는 법이다.

그룹의 이름은 킬링 키즈, 멤버는 다섯 명. 가화, 천, 레이, 알렉스, 시우. 천은 팀에서 둘째, 리드 보컬이고 악기를 잘 다룬다고 하며, 데뷔 미니앨범에 있는 수록곡들의 작사 및 작곡에 참여했다고 했다. 본명은 천제희, 별명은 천사제희. 멤버 동생들을 잘 챙겨서 그렇다고. 나는 트위터며 걸그룹 마이너 갤러리, 레딧을 뒤지며 정신없이 텍스트와 이미지를 먹어 치웠다. 여기서 무대 영상까지 보면 정말로 위험(입덕)할 것 같았다. (결국 집 가서 눈물을 흘리며 다 보기는 했다.)

이들은 국내보다는 해외에 팬이 많은 모양이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지만, 천이 공식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린 퀴어 플래그 이미지 덕분인 듯했다. 이거 뭐, 방송에서 대놓고 말만 안 했다 뿐이지, 자기 공식 계정에 이런 걸 올려줬던 연예인이 이 나라에 있었나?(당연히 있었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그것도 프라이드 먼스 첫날에!

후우, 이거 진짠가? 어쩐지 애가 지갑도 찾아줄 만큼 인성도 좋고… 드디어 케이팝이 내 퀴어링에 응답해 주는 것인가? 나는 천에 대한 친밀감을 일방적으로 쌓아가며 집 가는 버스에서 내내 실실 댔다. 인스타 팔로 완료. 그럼 트리위키도 좀 읽어볼까. ‘연습생이 되기 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바로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길어 춤선도 매력적이다. 중저음의 목소리도 그렇거니와 옷 입는 스타일이며 행동거지가 보이시해, 여자 팬이 많다.’ 으음.

제희는 보이시한 게 아니라 그냥 보이였던 건데, 언제나.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캔맥주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지갑을 열다가 지폐 사이에 끼어있던 스티커를 떨어뜨렸다. 맥주를 가방에 넣고 허리 굽혀 스티커를 줍자마자 나는 편의점에서 뛰어나와야 했다. 내 자신을 말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버렸기 때문이었다. 스티커 뒷면에는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식 계정이 아닌 다른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천의 사인과 함께.


*


인스타에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 며칠 뒤로 약속을 잡고 시간 맞춰 나가는 길 내내 나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고민했다. 다단계일까, 장기매매일까, 혹시 사이비 전도? 아니면 뭐지. 어차피 나나 그쪽이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거니 부담 갖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일찍 와있던 천은 내가 천을 알아본 것보다 더 빠르게 나를 찾아냈다. 내가 퀴퍼 후원 티셔츠를 입고 가겠다고 미리 얘기해 두었고 본인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바로 알아봤어요? 묻자, 딱 봐도 선생님으로 보이던데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 아이고, 누가 봐도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이라는 말을 그렇게.

그 애는 자신을 제희라고 편하게 부르라 하며 내 이름을 물었다. 본명은 기주인데 뭐, 활동가명이 궁금한가요? 이름이 많은 사람이라. 말을 하고는 바로, 날을 세워 말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이름이 많은 거야 연예인 쪽이 더하지 않을까? 그게 팬들이 지어주는 애칭이거나 세간의 평일지라도. 내가 아니라 내 일부에만 붙는 이름들에 대한 소감은 우리 둘 다 비슷할 터였다. 아님 말고.

저는. 제희는 말을 하다 말고 숨을 골랐다. 그의 버릇이었다. 인터뷰에서도, 소속사 유튜브에 올라온 자체 컨텐츠에서도, 그냥 입을 여는 모든 순간에 한 어절 말하고 숨 한 번 쉬고 말을 이어갔다.

─ 조언을 구할 어른이 필요해요. 그래서 연락드렸어요. 가능하시다면…

─ 무엇에 대한 조언이요?

─ 음, 뭔가 학교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트랜지션에 대해서요.

예상한 것보다 더 훅 들어온 말에 나는 눈만 도로록 굴렸다. 단체 스티커 뒷면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적어놓았으니 퀴어 관련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은 했다. 지하철에서 ‘유명인이 대중에게 커밍아웃하는 법’, 이런 걸 구글링 하면서 오긴 했는데, 제희는 몇 발자국 더 앞에 가 있었다. 항상 그랬다.

─ 일단 돈이 있어야겠죠?

답을 하고 나니까 그제서 상대방은 코딱지만 한 신생 회사에서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 그룹 멤버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연습생 기간 동안 회사에서 들인(들였다고 주장하는) 돈보다 지금까지의 수입이 적을 테고, 그럼 정산받은 게 별로 없을 거 같은데. 그렇지만 또 집 형편이 괜찮을 수도? 하지만 트랜지션의 의료적 조치에 돈 대주는 부모는 흔하지 않잖아. 이런 말은 안 해도 알겠지. 내 표정을 본 제희가 웃었다.

─ 우왓, 엄청 심각하시네요. 전 괜찮아요.

웃기는 소리지만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어요. 많은 걸 각오했어요. 곧 가족과 절연하고 친구도 꽤 잃을 거고 내 편인 사람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겠지만. 그 말간 얼굴을 보고 나는 울었다. 말을 들어줄 어른이 필요해서, 우연히 주운 지갑 속 퀴어 단체 스티커를 믿고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할 만큼 절박했던 사람 앞에서 내가 울었다. 울지 마세요, 여기서 그러시면 사람들이 제가 선생님 찬 줄 알잖아요. 농담에 헛웃음이 났다.

선새임. 네에. 언제고 계속… 제 편이 되어 주실 수 있나요? 그럼 제가 나중에 자서전 낼 때 서문에 선생님한테 감사하다고 쓸게요. 제 친구들 이름과 같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다.


*


나는 스펙트럼 위를 부유하는 이형의 존재이다. 살아온 시간 대부분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시답잖은 문장을 몇 줄 적고 나니 갑자기 피곤해져서 컴퓨터를 끄고 싶어졌다.

퀴어는 나이 들면 보통 어떤 일을 해요? 정상성에 처 돌아버린 회사가 좆같아서 계속 다닐 수가 없어요. 논퀴엇놈들이 너무 피곤하게 굴어요. 그런 말들에 우스갯소리로 활동가나 자영업자가 됩니다, 대답했던 벌을 이렇게 받는구나. 나는 방송 일을 접고, 카페 겸 바 ‘우연장’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퀴어 인권 운동 단체의 상근직이었다가 이제는 가끔 얼굴만 비추는 사장님이 있는 이곳은, 월세 보증금을 착실히 까먹으며 원룸 구석에서 굶어 죽기 일보 직전에 구한 일자리였다. 교육 봉사를 나가던 단체 선생님의 지인이 마침 직원을 구한다 하길래 제가 곧 쫓겨날 것 같은데요, 하고 지연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나는 한때 피디가 되어서 멋진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동성혼 법제화와 트랜지션 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싶었다. 몇 번 치지도 않은 언론 고시를 접은 건 산 입에 거미줄 칠까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파견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허드렛일만 하고 쉬는 날은커녕 씻고 잠잘 시간도 부족한 주 7일(에 한없이 가까운) 근무가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도저히 희망이 품어지지 않는 시기라서 그랬다. 일터에서 내가 나라고 얘기해도 되는지, 혹은 남이 내가 나인 것을 알아차리고 떠벌리고 다닐 때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시의 반짝이는 불빛이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해서 본가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집에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또래들의 조부모상 시즌은 지나갔고 슬슬 부모상 시즌인데 이상했다. 다들 장수하려나 보다. 뭐 어때, 나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앞으로도 절대 안 가지.

나는 냉동 감자튀김을 튀김기에 넣었다. 어쨌거나 살아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간단한 조리를 하고 서빙하고 설거지하다 그날 영업을 마감하면, 몸을 써서 정직하게 버는 돈의 가치가 고스란히 피곤이 되어 몰려왔다. 가게가 딱히 붐비지도 않고 퀴어들만 좀 드나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자주 바빴다.

가게 이름이 ‘우정과 연대의 장소’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중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의미를 물어도 끝내 알려주지 않는, 속내 모를 사장님은 온갖 복잡한 요리를(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가게를 운영하시겠지. 나는 사장님처럼 자리 잡은 자영업자도 아니고 그냥 거기 직원인데, 또 예전에 봉사활동 가던 단체에서 뭔 글을 써달라고 하면 헐값의 고료에 냉큼 원고를(퀄리티 보장은 못 하지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래저래 퀴어 커리어 슬픔 버전이었다.

가게는 가끔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공연 대관을 했다. 퀴어 뮤지션들이 무대를 채우면 나는 튀김을 만들거나 칵테일을 제조하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친구인 무영이나 가람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꿈의 직장을 다니고 있네, 핀잔을 주었다. 자기네들은 어느 날 정신 차려보면 회사에 불 지르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뭐만 하면 이건 퀴어 커리어 절망 버전이야, 하고 툴툴대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야, 우린 살아있는 버전이면 된 거야.


*


몸에 있는 수술 자국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했다. 중학교 때 옆 반에 심각한 교통사고로 인해 목덜미부터 얼굴 한쪽까지 화상 흉터가 있는 애가 있었다. 앞머리 옆머리를 기르고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다 잠가도 가려지지 않는 흉터. 그 애의 몸을 본 적은 없지만 떠도는 말로는 온몸이 흉터 투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기억 못 하는 시절에 무슨 사고가 있었겠지, 나쁜 기억이니까 부모가 말해주기를 꺼린다고만 생각했다. 멍청했다. 어릴 때부터 호르몬제를 계속 먹어왔는데도 몰랐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어른들이 먹으라고 하니 영양제인가 봐, 하고 삼켜왔던 나. ‘동성’ 호모소셜에 섞여들지 못했던 게 온전히 내 성격의 문제라고 여겼던 나. 대부분이, 어쩌면 모두가 감지하고 그렇게 굴었던 걸 텐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집에서 통학하기 어려운 위치의 대학에 진학하자 나는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친구들의 친구들은 내게 새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그 든든함 아래 나는 나를 표현할 언어를 찾아 정체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가에 갔던 방학의 어느 날, 부모에게 이를 이야기하고 한참 싸우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역겹게 굴었다. 두 가지의 법적 성별 중 하나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멋대로 수술한다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다웠다. 넌 원래 그런 애였지. 헛소리 말고 우리가 정해준 대로, 그 성별에 기대되는 삶을 제대로 살아. 그게 엄마 아빠 소원이야.

그 길로 울면서 자취방에 돌아왔다. 전혀 다른 개념을 아무렇게나 섞어서 오해하면서, 하다못해 인터넷에 검색 한 번 해볼 생각은 않고 그저 내가 잘못되었다고, 내가 괴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가족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자취방 월세 보증금을 빼가지 않은 게 그들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내 마음대로 정했다. 알바를 해서 학비부터 월세에 생활비까지 충당하는 건 빠듯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살아야 했다. 살고 싶었다. 그럴듯하게, 보란 듯이.


*


그렇게 죽지 않고 살다 보면 이런 어마어마한 미소년도 코앞에서 보고…

선새임, 술도 안 드셨으면서. 제희가 웃었다. 우리가 만나고 얼마 후에 녀석이 쓴 곡은 킬링 키즈의 컴백 타이틀곡이 되었다. 노래는 음원 사이트에서 일 위는 못했어도 팀의 인지도 향상에 제법 도움을 줬다. 덕분에 회사에서 발언권이 커진 제희는 꽤 즐거워 보였다. 천 씨는 전에도 어디 가서 할 말 못 하고 살 사람은 아니었는데, 가람의 말에 제희가 그건 그렇죠, 맞장구를 쳐줬다. 나는 주방과 홀을 오가며 일하는 중이었지만 온 신경은 친구들이 앉은 테이블에 가 있었다.

─ 데뷔 전에 회사에서 나가려고 했는데 붙잡힌 거거든요. 아쉬운 건 그쪽이에요.

역시! 가람이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거예요?

─ 제가 곡도 쓰고… 이것저것 할 줄 아니까, 회사에서 될 수 있는 한 맞춰주겠다고 했어요. 일단 머리만 길러달라 하고.

─ 머리카락을요? 왜요?

─ 너무 ‘진짜’ 같아서요? 맞긴 한데.

─ 회삿분들이 뇌라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네요.

─ 아아니, 걸커라는 말을 그렇게… 무영 씨도 오늘 와요?

─ 걔 요즘 애인 생겨서 우리랑 안 놀잖아요. 공짜 술인데도.

─ 누가 술을 공짜로 줘요?

아앗, 사장님이다. 가람이 비명을 질렀다. 기주 앞에 달아놨어요!

나는 닦은 그릇을 쌓아서 정리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게 대체 뭔 말이야. 장발의 초절정 미소년과 내 친구가 무슨 작당을 하여… 사장님이 둘의 테이블에 가서 같이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나는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손을 앞치마에 문질러 닦았다. 저도 끼고 싶어요. 계획이 뭔데요?

─ 그런 거 없어요, 아직. 이제 세우려고요.

─ 콘서트는 어때? 퀴어 바에서 공연을 해버려서,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누구나 아는 이쪽 셀럽 되기?

─ 우연장에서 음악천재 천제희의 솔로 공연이?

─ 아, 장소가 여긴가요?

─ 그냥 노래 커버만 몇 곡 해줘도 좋겠다. 제희 씨 노래 진짜 잘하잖아요.

사장님 신나셨네. 다른 테이블에서 호출 벨을 눌러 달려가는 와중에도 나는 이 모든 순간이 불러올 가능성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았다. 상대방에게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먹는 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흥, 쉬는 날에 영화나 보러 가자고 해야지.


*


아는 또래들의 결혼식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나는 논퀴어 친구의 결혼식에 종종 초대받았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공명정대하게 치르려고 당사자들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기분 상하게 하는 주례사나 사회자의 멘트도 없고, 신부와 신랑이 동시에 입장하며 모든 것을 절반 딱딱 나눠 평등하게 꾸린 행사. 축의금 회수를 목적으로 배가 터지도록 뷔페 음식을 먹고 떠들다 내 작은 방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나를 감싸고 있던 떨떠름한 기분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와 계속 연락할 정도의 친구라면 끝내주는 앨라이가 맞았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역시 양성평등이란 건 그런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시스)여자들과 (시스)남자들만이 서로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세계. (물론 그런 세계조차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질질 짜면서 우연장으로 향했다. 근무일도 아닌데, 친구들과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나타난 나를 보고 사장님의 눈이 커졌다.

─ 올 거면 얘기하지, 일하는 날도 아닌데. 뭐라도 마실래?

─ 됐어요.

─ 영업장에서 울면 손님들 술맛 떨어진다.

─ 지금 테이블 하나 있잖아요.

─ 참 나… 친구들은?

안 불렀어요. 나는 사장님이 유리잔에 담아 온 따뜻한 물을 마셨다.

─ 무슨 일인데?

─ 사장님은 그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 얘가 왜 이래.

─ 사장님은 저나 친구들보다 나이가 있으시잖아요.

─ 어어, 노인 공격? 공경은 아닌 듯.

─ 어떻게 버티셨어요, 이런 걸. 그럭저럭 사이 괜찮고 절대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인데, 저 혼자만 모르는 얘기를 자기들끼리 하고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인사말 하나 모르는 외국에 혼자 뚝 떨어진 느낌을.

그럴 때지, 그럴 때야. 사장님이 미소 지었다.

─ 그런 시기가 있어. 세상에 나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드는 거야. 심지어 그렇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그러는 거야. 내가 친구들이랑 밤새 술 퍼먹고 웃고 떠들어도 되는 시기를 지나서 서른인데, 마흔인데. 우리 같은 사람에겐 혈연 가족이 더더욱 소용없어질 때고. 그렇다고 단단한 기반이 뭔가 있나, 하면 그건 뭐 퀴어 아니어도 누구도 쉽지 않지만.

─ 저는 죽지 못해 살고 싶지는 않아요. 목숨만 겨우 붙어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삶이란 걸 제대로 살고 싶어요. 단지 그것뿐인데.

나는 엉엉 울었다. 사장님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 그럴 땐 약속을 잡아.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날 날을 잡고, 택배를 시키고, 음식점에 예약을 걸고, 비싼 물건 할부 결제하고. 책임 질 일을 만들어. 이번 주 목요일까지, 돌아오는 화요일까지, 다음 달 삼일까지. 그렇게 버티는 거야.

호출 벨이 울리자 사장님은 좀 있어봐, 눈짓을 주고는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제희가 내 핸드폰으로 건 전화를 받았다.

─ 선새임.

─ 난 제희 씨 선생님이 아닌데요.

─ 아뇨, 선새임이라고 부를래요.

─ 편하게 말하세요.

─ 전 그게 편해요.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시고 도와주셨으니 선생님이죠.

─ 내가 뭘 했다고…

─ 선생님에게 약속할게요, 저. 조만간 그룹에서 진짜로 나올 계획이에요.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더라고요. 살기 위해 할 일을 하고. 솔로로 활동할 거예요. 그 미래에서 제 이전 목소리와, 그러니까 지금 목소리요, 미래의 목소리를 합쳐서 듀엣곡을 낼 거예요. 아이디어 괜찮죠. 음, 온갖 시상식에서 상도 받을게요.

천제희가 저 너머에서 계속 조잘거렸다. 평소 말할 때처럼 숨을 고르지 않고, 말을 쉬지 않고.

─ 혹시 취했어요?

─ 술은 전혀 안 마셨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선새임.

─ 네.

─ 약속하고 나서 책임지기가 너무 어려워요. 무섭고 힘들어요. 그래도 해야겠죠?

사장님이 좀 전에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고 있던 게 내 지인에게 연락하는 건 아닐까 추측은 했지만. 그런데 얘는 뭐 이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항상, 나약한 논퀴어 새끼들이 외로움을 논할 때마다 아구창을 갈겨주고 싶었다. 때때로 시스모노퀴어들이 ‘고작’ 연애 가지고 징징대는 것이 꼴 보기가 싫었다. (무영아, 미안해!) 종종 제드들이 헛다리를 짚을 때마다 주머니 속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아오, 열받아! 그런데 제희는 저 멀리 앞에 가서 그냥 자기 얘기를 했다. 나보다 몇 배 더 철저하게 혼자이고, 더 조심해야 하고, 더 공격받기 쉬운 위치에서 절대 도망치지 않고.

선새임, 우리 뭔가 약속을 해요. 그리고 그걸 지키려고 같이 노력을 하면 될 거 같아요, 그렇죠? 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대답했다. 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될게요.

그럼 저도 약속할게요. 언젠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얘기를 다 해드릴게요. 제희의 목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저희 공원에 소풍도 가고 맛있는 거도 먹으러 가요.


*


킬링 키즈의 단독 콘서트 날짜가 나왔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한 시에 시작하는 공연이었다. 제희 씨 회사는 대체 무슨 심보인 거야? 사장님이 투덜댔다. 온라인 생중계도 한다지만 좀 그렇다. 제희가 멋쩍게 웃었다. 저희는 수익이 너무 안 나서 비행기 타고 해외공연 가기도 어렵다네요. 공연장도 작잖아요, 실제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걸요. 온라인 생중계가 타깃이에요. 그 시간에 해야 공연을 볼 수 있는 해외 팬분들. 전광판에 실시간 댓글 창 띄워놓고 소통하면서 무대 할 예정이에요.

─ 팬데믹도 이제 아닌데. 환금성 좋은 해외 투어를 왜 안 잡지. 외국에 팬 꽤 있다면서요. 뭔가 이유가 있나.

─ 최근에 회사에서 보이 그룹 데뷔해서.

─ 아.

왜 바로 알아듣는 거야. 이 케이팝 고인 물들.

킬링 키즈가 좀 더 뜨면 좋을 텐데. 초기에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은 투자를 해야 할 거 아냐, 회사라는 곳이…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룹의 막내 시우는 주말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출연 분량 없는 동생 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셋째 레이는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교포인 알렉스는 조만간 본가로 돌아갈 것 같다고 제희가 얘기해 줘서, 케이팝에 절여진 퀴어들은 팀의 미래를 직감했다. 이들은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겠구나, 하고. 데뷔하고 이제 이 년 조금 넘었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재능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업계인지. 정말 낭비 그 자체다 싶었다. 그래도 제희는 계획이 다 있잖아. 다른 그룹에(그러니까 그 신인 보이 그룹에) 곡도 팔고 하니까 팀이 없어져도 덜 막막하겠지 싶긴 했다.


*


콘서트 당일에 가람과 나는(무영아, 연애는 즐겁니? 네가 행복하다면 오케이란다) 초대권을 받아 공연장으로 향했다. 막차를 타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건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긴 했다. 올나잇 콘서트 같은 것도 있기야 하지만.

우리는 초대석에 앉아서, 대체로 괜찮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종종 있는(물론 그 대부분은 천이 무대에 있을 때였다) 공연을 관람했다. 천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그룹의 곡을 솔로 버전으로 편곡해서 장르를 바꿔버렸는데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고. 괜히 뿌듯해지는 광경이었다.

구십 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멤버들이 엔딩 멘트를 시작했다.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VCR 끝나면 앵콜하러 다시 나오겠지? 케이팝으로 다져진 지난 시간 덕에 아직 두 시간을 채우지 않은 공연을 보고 놀라지는 않았다. 무대에선 형식적인 문장들이 이어졌다.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 멤버 가화의 차례에서 일이 터졌다.

─ 저 두 달 후에 결혼합니다.

일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이, 그러니까 기껏해야 멤버와 회사 관계자의 가족과 친구 정도일 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중일 해외 팬들을 위해 영어로 동시통역을 해주던 스피커도 소리가 뚝 끊겼다. 어, 뭐, 그럴 수 있지. 저이는 그룹에서 맏이이기도 하고. 결혼해도 활동할 수 있는 거고. 나와 가람은 소심하게 축하의 박수를 쳤다. 온라인 중계 댓글 창에 가화의 말을 외국어로 옮긴 댓글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천은 멤버 레이와 함께 무대 뒤로 뛰어갔다. 회사와 얘기해서 대책을 내놓겠지…

정말 잠깐 사이에 공연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멤버 시우는 반쯤 우는 얼굴로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가화가 팀에서 탈퇴하겠다고 하자 통역 대신 말을 옮겨주고 있던 알렉스가 멈칫했다. 나는 멍하니 전광판의 댓글 창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원색적인 비난 반, 축하한다는 말 반, 그리고.

『잘 생각했네 그룹도 잘 안 되는데 최선의 선택인 듯』

『개인 활동 기회 잡으려는 의지도 없던데 역시 믿는 구석이 있어서 ㅋㅋㅋ』

할 수만 있다면 전광판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평소엔 관심 한 번 주지 않다가 악담만 하러 튀어나오는, 나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 끔찍했다. 스태프가 댓글 창을 끄고 VCR을 틀었다. 멤버들은 모두 무대 뒤로 사라졌다. 영상은 킬링 키즈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동안 곁을 지켜준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이젠 가화의 일로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들이었다. 허공에 무심히 흩어지는 노래와 춤, 전하고 싶었던 마음, 쌓여온 순간순간들.

핸드폰으로 킬링 키즈를 검색해 봤다. 해외 팬들의 트윗만 몇 개 보였다. 국내 포털 기사는 회사에서 보도 자료를 뿌려야 뜨겠지만서도,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충격이지만 누군가에겐 일어났는지조차 모를 일. 딱 그만큼의 세계.

영상이 끝나고 적막이 한참 이어졌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가 이래서 앵콜은커녕…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피아노 연주가 들려왔다. 천의 연주였다. 떠나는 이를 붙잡고 싶어 하는 애절한 멜로디는 아니었다. 힘이 넘치지도 않았고, 기뻐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자신은 괜찮을 거라며 담담하게 손 흔드는 것, 그뿐이었다.

가람은 제희가 퇴근할 때 우리도 같이 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기다려주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모두가 퇴장하고 결국 앵콜 없이 사방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우리는 나가지 않고 공연장에 계속 있었다. 이제야 반응이 좀 올라오네. 가람이 자기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원래 툭하면 나 퇴사할 거야 하는 애들은 퇴사 안 함ㅋㅋㅋ 암말 없다가 저 낼부터 안 나와요 하는 애가 진짜 퇴사함 그래도 좀 충격,,』

─ 아, 이거 가화 얘기야?

─ 어어.

─ 툭하면 퇴사한다 하는 건…

─ 제희 얘기지. 회사와 시기를 조율하고 있댔으니.

멤버도 팬들도 다 아는 천제희 탈퇴설. 천은 매몰차게 굴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나가지 말라는 멤버들의 만류에 매번 망설였다. 회사에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끔 보장해 주겠다며(회사도 자리를 잡은 게 아니니 누구를 흔쾌히 놓아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를 계속 붙잡았다. 다들 모르면서, 그가 팀과 회사를 떠나려는 이유를 꿈에도 상상 못 하면서.

가요, 선새임. 어깨에 살짝 얹히는 손에 놀라 깼다. 언제 잠들었더라. 가람은 옆에서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우리 셋은 공연장에서 나와 밤길을 걸었다. 킬링 키즈의 퇴근길을 기다리는 팬들은 당연히 없었고, 세상은 무섭게 고요했다. 나와 제희는 사거리에서 가람에게 택시를 잡아주었다. 당분간은 뭐 그냥 있어야겠는데요. 내일 머리나 잘라야지. 제희가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우연장 가실 거예요?

─ 마감 시간 지났는데…

─ 콘서트 중계 가게에 켜놓으신다고 해서, 아직 계실 것 같아요.

─ 그럼 가요!

인생의 많은 일이 전연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실 그때의 나는 뭐가 어디서 흘러왔는지도 잘 몰랐었지만 말이다.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르고, 그 구름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그 비가 내린 적 없는 척할 수도 있고.


*


시간은 성실했다. 천제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차근차근 이뤄나갔다. 팀과 회사에서 원만하게 빠져나왔고, 인스타 라이브에서 커밍아웃했다. 탈코한 자매를 잃었다며 울부짖는 멍청이들을 실컷 욕해주고(내가 얼마나 열심히 꾸미고 다녔는데 무슨 소리야?)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했다. 그는 조그만 라이브 클럽들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이것저것 규탄하는 행진에 연대공연을 나갔다(나는 그냥 행진만 했다). 열심히 곡을 쓰고 우연장에서도 몇 번 공연했는데, 변해가는 목소리 때문에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호르몬 대사가 널뛰는 덕에 컨디션도 오락가락해서 집에 몇 주고 처박혀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그는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빠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앗, 이것이 퀴어 커리어 슬픔 버전인가.

그 사이 나는 우연장에서 매니저가 되었고(여기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은 어차피 사장님과 나 둘인데) 월급이 약간 올랐고 앞으로의 행사 기획을 맡기로 이야기되었다. 다시 보니 이거 좀 이상한데요, 사장님.

내가 처음으로 한 기획은, 이전에 교육 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청소년 퀴어들을 우연장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그때 친하게 지냈던 이들은 십 대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시간이 꽤 흘러서 술을 마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들 특유의 세상에 대한 취약함 덕에 알코올 중독이 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같이 술을 퍼마시자고 불러내는 건 아니었다.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어서 시작한 계획이었다. 한때 꽤나 의지했던, 대부분 나보다 어렸지만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던 이들. 내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미워하지는 않을 수 있게, 희망을 품어 보자고 결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SNS 계정이며 전화번호 하나하나를 붙들고 연락을 했다. 삼십 대가 된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 안전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많이들 연락했니? 아뇨, 거의 다 계정 없애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많은 수가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슬펐다. 몇몇 녀석들은 진짜 보고 싶었는데. 나에게 있는 건 트윗이 새로 올라오지 않은 지 한참 지난 트위터 계정이나 결번 멘트가 나오는 전화번호뿐이었다. 깜냥 밖의 일을 벌여놓고 애태우는 모습에 제희가 미소 지었다.

─ 저희 오랜만인데 일 때문에 바쁘시네요.

─ 말도 마요, 사장님 앞에서 드러눕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 그래도 다음 달 제 공연은 꼭 오셔야 해요. 공연장이 꽤 크거든요. 라인업도 좋고. 티켓 우연장에 맡겨둘게요.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오, 네네.

─ 누리를 기억하세요?

─ 누군데요?

제희는 핸드폰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번 행사에 꼭 왔으면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 본명이 누리였어요? 알죠, 그렇지 않아도 찾아보고 있었는데.

─ 연락받지 않을 거예요.

─ 네?

─ 죽었거든요.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리들에겐 항상 죽음이 가깝지. 그렇지만 누리는, 이제야 본명을 알게 된 이 녀석은. 나보다는 당연히 어리고 어쩌면 제희보다도 두어 살 아래일 그 애는. 언제요? 언제…

─ 제가 선생님에게 지갑을 찾아주기 얼마 전에요.

─ 와, 천제희.

─ 죄송합니다. 끝까지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제희가 숨을 고르고는 말을 느릿느릿 이었다. 누리가 선생님 같은 분을 알게 되어서 좋다고 했었어요. 핸드폰으로 사진 보여줘서 선생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냥, 길 가다 교통사고가 심각하게 났는데, 가족이 연락을 거부해서 수술을 바로 못 받았어요.

나는 울었다. 카페에서 제희와 이야기하다 우는 건 두 번째였다. 처음엔 녀석의 단단함에 놀라서, 지금은 녀석이 나에게 계속 묘하게 거리를 두었던 이유를 알게 되어서. 먼저 말 걸어놓고는, 둘이서 놀러 가고 영화 보고 전시 보고 밥 먹고 술 먹고 나서는, 때때로 가람과 무영을 대하는 것보다도 더 멀게 굴었던 이유가 이런 거라서. 남몰래 녀석을 원망했던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 제가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누리는.

천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였다.

─ 털어놓으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또 그건 아니군요. 그때 방송국에서 선생님이 지갑을 떨어뜨리고 가는 걸 보고 전… 어떤 계시를 받았다고 느꼈어요. 회사에서 그 퀴즈쇼에 나가라고 한 게, 어쩌면 누리가 하늘에서 도와준 거겠지 하고. 짝사랑 상대는 사고로 죽었는데 혈연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해서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세상 어디보다도 미의 기준이 제한적인 업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조언을 구하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너무나도 필요했어요. 누리가 선생님 얘기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럼 좋은 분이라고 증명된 거니까. 제가 언젠가 약속했었죠, 중요한 얘기를 다 해드리겠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좋았다. 많은 것이 명확해진 대화가 나름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다 말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공연에 가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지만. 그렇게 뱉어내고 돌아서려니 사람은 나이를 몇을 먹어도 참 소용이 없구나 했다.

─ 한 때 누리를 돌봐준 사람과 알고 지내려고, 또는 제 자신이… 이런 말 하면 웃기려나. 누군가가 절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게 좋아서, 그것만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몇 년이나 끌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와 누리가, 선생님과 누리가 알고 지낸 것보다 우리가 더 오래 본 사이잖아요.

제희가 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밖으로 나온 건 나인데 카페 안에 남은 그 애가 더 추워 보였다.


*


공연 날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자랐다. 가고 싶은 마음 반, 가기 싫은 마음 반. 유사연애라니 역시 아이돌은 아이돌이구나. 가람은 내 얘기를 다 듣더니 그렇게 평을 내렸다. 무슨 소리야. 그럼 아니냐? 제희 일이라면 헤벌레 신나서 쫓아다니고 도와주고 하던 게 누군데. 그치, 맞지. 꺼져줄래, 무영아. 네 살 차이면 천생연분 아님? 다섯 살 차 아니었나? 우리는 어째 나이를 먹어도 이런 꼴인가. 너 또 헤어졌냐? 넌 대체 뭘 위해 수절 중인데? 싸우지 마세요, 여러분. 사이좋게 지내세요. 모이기만 하면 힘이 넘쳐 싸우는데 이게 서른 줄 낡은이들이 맞는지.

─ 그래서, 진짜 안 갈 거야?

─ 모르겠어.

─ 안 가면 후회한다. 이번에 같이 하는 팀들 쟁쟁하던데.

─ 그래, 그냥 멋진 무대 공짜로 보고 오면 되지. 티켓 우리 거 다 줬다며.

─ 아, 시끄러워. 니네 짜증 난다.

─ 배달은 왜 안 와?

─ 안 먹는다 해서 안 시켰는데?

나와 가람과 무영은 상대방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냥 공연 끝나고 근처에서 먹자. 야, 근데 그 동네는 맛있는 거 없지 않냐. 그만들 해라, 좀. 가람과 무영은 이동하는 내내 평소보다 더한 텐션으로 수다를 떨었다. 나를 공연장까지 무사히 데려가기 위해 용을 쓰는 게 느껴졌다.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 드려야지. 나는 못 이기는 척 친구들과 길을 나섰다.

지하철에서 둘이 떠들거나 말거나 나는 생각에 푹 잠겨있었다. 우리 나이에 사오 년 정도면 아주 짧은 시간은 아니긴 해. 지금부터 오 년 전? 그럼 나조차도 제법 애새끼라고. 근데 기댈 수 있던 사람을 잃어버려서, 물론 얘기는 좀 주워 들었다지만 역시 잘 모르는 사람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같은 편이 되어달라고 말하던 그 애는… 나보다도 더 어렸는데. 용기를 낸 거잖아.

음… 아닌가? 나 또 미인의 얼굴에 홀려서 이 꼬라지가 된 건가? 공연장 가는 길도 안 찾아보고 친구들 뒤를 졸졸 따라가며 계속 고민했다. 정말 가도 되나? 날 보면 뭐라고 할까, 천제희. 그때 그렇게 가버렸는데, 올 거라고 예상했을까?

입장하고 프리 드링크를 받은 나와 친구들은 한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제 무대 앞 펜스를 잡기는 부담스러웠고 체력도 따라 주지 않았다. 앞 순서인 다른 밴드들이 하나둘 공연을 진행했다. 나, 락이 좋다. 기타 치는 남자들이 멋있는 거 같아. 무영이 중얼거렸다. 가람이 맞받아 장난을 치려는데 천이 무대로 나왔다. 숨죽여 집중하는 친구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귀여운 녀석들, 내 기댈 곳.

제희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껏 낮아진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예전 목소리와 멋진 듀엣을 이루었다. 얘는 또 약속을 지켰네. 그럼 이 뒤에는 뭐지, 시상식? 줄곧 망설였는데 막상 무대를 보니 좋았다. 천의 노래를 들으면 나는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모양이었다.

『내게 말을 주세요, 그대의 목소리로』

무대와 관객들의 열기에도 주변이 한껏 서늘했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 어디에서도 누리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바란 게 무엇이었을까. 여기엔 그저 우리가 살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해주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우리가 약속을 할 때, 받는 건 부서진 포옹뿐이지만』

떠난 이를 돌아보면 조금은 울게 된다. 그건 지금 여기, 소중한 이들이 여전히 같이 있음을 아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이가 기꺼이 노래했다. 우리의 예술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조명이 호흡이라도 하듯 가쁘게 깜박거렸다.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다 끝내는 포기했다. 그 청신한 얼굴로 계속 살아가겠다 약속하는 사람을, 떠난 이로 착각하고 싶었던 건 누구의 탓일까 분간하려던 마음을.




+ 코로나 때 썼더니 무슨 온라인 중계만 하는 케이팝 콘서트가 나오고... 아무튼 공모전에 보내는 족족 떨어졌기에 조금 손 봐서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 이번 달 영화 리뷰 놓치지 말고 올려야 할 텐데 너무 바쁩니다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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