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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Nov 05. 2020

요즘.. 그냥 그렇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백수 상태로 지낸 지 8개월째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고, 취업을 한 이후엔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필요에 의해 투잡에 쓰리잡까지 경험했고, 이직을 할 땐 환승 이직을 했다. 아!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쉬다 다시 취업했었지...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쉬게 되었다. 나는 무서웠지만 남편은 지지해 주었다. 아니 환영해 주었다.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을 했다. 사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며 그만둔 거라 매일 같이 병원 방문이 기본이어서 바쁘긴 했다. 하지만 병원을 다녀오고 나에게 주어진 긴긴 시간은 공허했다. 아직 아이도 없는 우리 집에서 나는 뭘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누워서 낮잠을 즐기자니... 잠이 오질 않았다. 본래 일을 하던 시간이기도 했고, 나는 그때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병에 걸려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누군가를 만나러 다니자니... 코로나도 발목을 잡았고,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리고 몇 없는 친구는 한참 직장생활에 바쁘다. 그럼 집안일을 열심히 해 보려 했더니...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집안일 잘하는 사람들 브이로그를 한참 찾아봤다. 아... 청소가 문제가 아니라 인테리어가 문제인 것 같다. 나름 이번에 새로 이사하며 인테리어를 한 집인데 왜 분위기가 이렇게 다르지? 아... 저 정리함이 없어서 그런가? 아... 우리 집엔 저 하얀 커튼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럼... 커튼부터 사 와야 하나? 아... 쇼핑이 힘들어서 집 정리를 못하겠네... 그럼 요리를 해 볼까? 요리하는 영상들을 또 보았다. 음... 파도 있고, 고기도 있고, 양파도 있고... 그런데... 요리를 하면 왜 다른 분위기가 나지? 아... 우리 집엔 저 무쇠솥이 없지... 저 솥이 있어야 하나 봐... 아! 저 테이블보도 없네... 저 고기 전용 집게도 없고... 우리 집엔 없는 게 왜 이렇게 많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 좋아하던 독서라도 해 볼까? 집에 있는 책은 이미 읽은 게 대부분이기도 하고... 살 땐 궁금해서 샀는데... 지금 보니 재미가 없네... 아... 괜히 샀네... 이건 중고로 팔고 새로운 책을 사야 하나? 책 사러 가면서 커튼이랑, 무쇠솥도 사 오면 되는 건가? 아! 캄포 나무 토마토 사야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한 달을 이러고 방바닥에 내 몸을 스캔하고 있었다. 착하디 착한 남편은 청소도, 요리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한가득 하는 나를 보며 "근데... 집에 왔는데 누가 불 켜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 자기가 쉬길 너무 잘한 것 같아."그런다. 아... 나만 아픈 게 아니고 너도 아픈 것 같은데... 우리 괜찮은 건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일어났다. 양쪽으로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 좀 차려보고, 일단은 청소를 했다. 브이로그에 나오는 하얗고 조그마한 예쁜 청소기는 아니지만, 우리 집을 깨끗이 치우는 데는 아무 문제없었다. 고장도 안 난다... 쳇! 막대걸레도 있지만 모처럼 손으로 바닥을 닦아 냈다. 무릎도 아프고 손목도 시큰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무쇠솥은 아니지만, 사은품으로 받은 스텐냄비에 남편이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를 한가득 끓였다. 그리고 남편이 눈치채기 쉽도록 청소기는 재자리가 아닌 거실 한가운데에 두고, 레인지는 후드도 가동하지 않았다. 역시! 오자마자 "청소했어? 힘든데 뭐하러... 내가 주말에 하면 되는데... 근데... 이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는 우리 집 아니지? 어? 우리 집이야? 오늘 내 생일이야?" 난리법석이다. 한참 보고 있으니 나도 뭔가 뿌듯함이 느껴지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일단... 밥 먹고 남편 기분이 계속 좋으면 샤랄라 커튼으로 바꾸자고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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