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팔랑귀
병원을 옮기려고 맘을 먹자 더 급해졌다. 본래도 성격 급한 걸로 유명한데...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더 조급했다. 어차피 시험관 경험이 있어서 다른 병원에 가더라도 당장 시술을 불가한 시기였다. 한 달은 더 쉬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카페 동지들의 글을 보면 자연 주기도 있고, 미리 한두 달 전부터 약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고 너무 다양했기에 미리 병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전화로 미리 상황설명을 하고 예약을 한 후 첫 방문을 하는 날. 내비게이션을 잘못 보고 한참을 해매 1시간 반 거리를 두 시간 만에 도착을 했다. 아이고... 첫날부터 이렇게 진을 빼서야...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주차장에서부터 나보고 그냥 내리란다. 대신 주차를 해주시는 거였다. 아... 이렇게 친절한 곳이... 알고 보니 주차장이 너무 협소해서 심각한 주차난을 겪는 병원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새로 방문하는 병원의 새로운 주차방법마저도 맘에 쏙 들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처음 방문하는 사람을 위한 상담 구역이 따로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클래식이 흐르고, 차분한 어투로 부드럽게 설명해 주시는 간호사 선생님은 왜 이리 따스하게 느껴지는지... 문진표를 작성하며 '많이 힘드셨지요? 잘 될 거예요. 저희가 함께 합니다.' 하시는데... 내가 왜 이제 왔을까... 했다. (이전 병원에서도 이런 말씀은 많이 하셨는데... 이날은 정말이지 마법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병원의 연역에 시험관 시술 성공률, 후기가 가득한 병원의 안내문을 받아 들고 나도 꼭 이렇게 사진을 찍어 감사하다고 보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난임 전문 의사 선생님만 8분 정도가 계시는 듯했다. 상담 후에 내 이전 진료 기록을 보시고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접해보신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했더니 병원에서 제일 환자가 많은 선생님과 만나게 되었다. 에초에 '이 선생님을 선택하시면 예약과 관계없이 대기시간은 길수 있어요. 괜찮으실까요?' 하시는데... 다들 기다리는데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야... 병원에서 기다리는 것 정도야 할 수 있지 않겠어? (이 선택이... 이후에 병원 방문 때마다 책을 한 권씩 다 읽고 오는 멋진 기록을 선물해 주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을 만나 뵙는데 나이가 조금 지긋해 보이시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기록을 찬찬히 보시더니 '여기까지 오느라 맘이 힘들었지요? 어렵다고 하지만 안 되는 건 아니니 잘해 봅시다. 최선을 다할 테니 대신 마음을 조금만 편안하게 먹고 같이 노력해 봅시다.'하시는 거였다. 그러면서 초음파를 보는데 뒤 사람에게 미안해 질정도로 꼼꼼히 보시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셨다. 이건 이래서 좋고, 이건 조절이 좀 필요하고 하시며 꼼꼼히 이야기해 주시는데... 인기 있으신 이유가 있으신 듯했다. (물론 후에 찾아보니 이 선생님을 싫어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결국 맞는 사람이 다 있는 거겠지?)
한 달은 쉬어야 하는 상태이니 자연임신을 시도해보자는 말씀과 함께 새로운 병원 생활도 시작이 되었다. 두시간을 달려와 간호사 선생님과 20분, 의사 선생님과 10분 정도 만나고 돌아가는 1시간 30분의 시간... 결코 짧진 않았지만 이번엔 기필코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병원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나랑 맞는 곳이 따로 있었다는 그런 생각? (이전 병원도 실은 의사 선생님이 너무 좋으셨다. 그래서 계속 거기서 시도하고 싶었지만 다른 주사 처방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나름 고차수가 되어 가니 말이다. ) 잘될 거라는 말... 함께 노력해보자는 말... 너무 힘이 됐다. 그래 잘 될 거야. 이번만큼은 팔랑귀라 해도 좋다. 이야기하신 대로 잘 되기만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