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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Sep 11. 2023

영화 '잠' 리뷰

리뷰가 아닐 수도..

최근에 영화 '잠'을 보았습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극장에 갈 생각도 없던 내가 충동적으로 가서 보았습니다.

계기가 재미있습니다.


지인들이 하는 유튜브를 한 바퀴 돌려고 유튜브에 들어갔습니다. 알고리즘으로 뜬 상단의 영상 중에 하나가 저의 눈길을 잡았습니다.


바로 이 썸네일이었습니다. 저는 '유랑쓰'라는 채널을 이날 처음 보게 됐습니다. 아마도 '봉준호'라는 태그가 저를 걸었나 봅니다. 제목에 봉준호 감독의 애제자라는 말이 자극적이었습니다. 음.. 저에는 꽤나 공격적인 단어입니다.  한국 영화가 도제시스템의 허물을 벗어난 지 좀 됐다고 생각했는데 애제자라니.. 그것도 봉준호 감독의? 저는 제목의 도발에 제대로 낚였고 그 애제자라는 놈이 누구냐 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았습니다.


영상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해당 유튜버는 한 구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고, 그 구독자가 '잠'의 감독인 유재선 감독이었다.

감독은 메일에서 평소에 유랑쓰 채널을 즐겨보고 있고 신혼여행도 유랑쓰에서 소개해준 여행코스로 다녀왔다. 이번에 감독 데뷔작 시사회에 초대하고 싶다. 그래서 잘 다녀왔다. 영화 재미있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재선 감독을 찾아보니 영화 '옥자' 연출부를 했다는 것 그리고 단편작품도 주목을 받았었다는 정도의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을 확인하니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이었습니다. 이는 요즘 2시간, 2시간 10분을 오가는 대부분의 영화와는 꽤나 분량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뜻은 아주 간결하게 보여줄 것만 보여주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주연배우와 조연을 합쳐도 4인이 넘어가지 않는 이 영화. 독립영화라고 하기에는 주연 배우급이 남달랐고 그렇다고 본격 상업영화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영화. 안 보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 보면 대표적인 작법이 3막 구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승-전-결 구조에서 승-전이 2막으로 엮었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이 영화는 영화 내에서도 자막을 사용해서 1,2,3장으로 챕터를 나눕니다. 그리고 챕터의 나눔처럼 영화의 구성도 그에 맞게 진행됩니다.


러닝타임이 말해주듯 영화는 지겹지 않습니다. 재미있지만 '와! 대박이다'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요. 영화가 관객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독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관객을 놀리듯 수수께끼와 스무고개성 메타포를 잔뜩 내포하고 맞춰봐라~ 맞춰봐라~ 식의 오버페이스도 아닙니다. 절하게 흘러갑니다.


공포는 우리 일상의 공포가 제일 무섭습니다. 본격적으로 귀신들이 활개를 치기 보다는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같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공포.


이 영화는 영화판을 경험한 제가 볼 때 삼박자가 잘 맞은 영화입니다. 낮은 제작비, 임팩트 있는 주연배우, 이 주연배우들을 설득한 시나리오. 시나리오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주연배우가 보여줄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남편 역의 이선균배우도 그렇지만 특히, 정유미 배우의 연기는 정유미 배우의 기존 필모에서 볼 수 없는 연기였습니다.


요즘 넷플릭스에도 종종 데뷔하는 감독이나 두 번째 작품을 선 보이는 감독들이 보입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고난도의 CG를 사용하거나 세계관의 스케일만 잔뜩 키워 초반에 기대를 자아내다가 뒤에서 힘이 쫙 빠지는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에 비하면 유재선 감독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딱 그만큼 욕심내지 않고 집중해서 실력을 발휘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잠'은 칸에 비경쟁으로 초청되었습니다. 칸 영화제는 젊은 영화인들을 지켜봅니다. 마치 자기들이 키워준다는 분위기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선택한 감독들은 헛다리를 짚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불러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유재선 감독의 첫 비행은 순항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또 한 명의 감독이 생각났습니다.

이용주 감독입니다. 이용주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연출부를 했고, 영화 '불신지옥'으로 데뷔를 해서 '건축학개론'으로 대박을 친 감독입니다.(T.M.I이긴 한데 봉준호, 이용주, 유재선(국제학부)이 모두 연세대 출신입니다.) 그래서인지 유재선 감독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스포가 어쩔 수 없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딱히 스포일러 같은 건 없군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요즘 극장 가는 게 별다른 큰 이벤트도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 앞으로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릴 젊은 감독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시고 가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다음에 유재선 감독이 더 큰 감독이 되고 나서 데뷔작을 극장에서 직접 본 이야기를 하면서 너스레를 떨 자격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거니까요. '저 감독. 내가 진작에 알아봤지.'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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