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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15. 2021

<선택의 연속>



임신 기간 동안 예비 부모들에게는 선택의 연속이다.


검사를 받는데도 옵션이 다양했다. 노산에 포함되는 산모의 경우는 그 옵션이 더 다양 해졌다. 그때마다 나는 공부를 해야 했다.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과 내 아이에 대해 부모로서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정처럼 조금은 빠듯한 집에서는 이것도 역시 계급이라고 생각됐다. 우리는 철저히 계산을 했다. 비용이 드는 만큼 그것이 실질적으로 아이와 산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나서 선택했다. 나는 이때의 들어버린 습관이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쭉 이어졌다. 종종 이런 나의 태도를 불편해하는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병원에서는 최종 결정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의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언제나 최종 결정은 의료 지식이 전무한 보호자의 몫이다. 해당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을 경우의 불이익은 모두 보호자가 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병원에 가기 전이면 아이 상태나 예상되는 질병에 대해서 한참을 검색해서 어느 정도 알고 간다. 그리고 가서 질문을 한다. 그럼 잘 받아주는 선생님이 있고 뭔가 불편해하고 귀찮아하는 선생님이 있다. 후자는 아웃이다.


임신 후기에 들어서서 몇몇 문제가 발생했다. 아기가 뒤집어진 상태로 있다는 것이다. 담당의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다. 또 다른 검사에서는 아기가 심장이 조금 약해 보인다고 했다. 예정일이 점점 다 되어 가면서 아이는 제자리를 찾았지만 돌아 누워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하는 바로 돌아왔는데 누워있어야 할 모양이 엎드린 자세로 있다고 했다. 태아의 자세가 뒤를 향한 상태가 좋은데 앞으로 위치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태아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산모에게 운동을 부지런히 하라고 했다. 아내는 출산 2주 전까지 일을 했다. 서울 남산 자락 바로 아래 살았던 우리는 주말이면 남산을 계단을 이용해 팔각정까지 올랐다. 그래도 태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엄마 뱃속이 너무 좋아서 좀 더 놀다 나갈래요.’ 하는 것 같았다. 예정일 일주일 전에 담당의가 물었다. 현재로써 예상되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알려주셨다. 보통 이렇게 태아가 내려오지 않으면 자연분만을 원할 경우 예정일이 지나서 기다린다. 하지만 더 성장하게 되면 자궁이 늘어나고 골반에 통증이 오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도분만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담당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50% 확률이라고 했다. 내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50% 확률로 유도분만으로 해서 자연분만이 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유도를 했는데 진통만 죽어라 수십 시간 하다가 결국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라고 했다. 그래서 만약에 산모가 자연분만을 꼭 고집하는 게 아니면 수술을 선택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의사는 첫 출산이니 자연분만을 권해드리는데 이번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도 의사도 나에게 결정을 미루었다. 나는 수술을 하자고 결정을 했다. 50%의 확률에 나는 위험을 더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내가 자연분만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난 수술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서 말했지만 임신 기간 중 나름의 공부로 자연분만이 태아에게 주는 혜택을 잘 알고 있었다. 산도를 나오면서 아기는 유익한 박테리아를 받게 된다. 아기의 폐에서 산모의 체액을 짜내게 된다. 대수술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입원기간이 단축된다. 천식과 비만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등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는 자연분만에 대해서 아주 많은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 점이 아내를 조금 위축되게 만들었다. 아내는 몇 번이고 나에게 확답을 듣고 싶어 했다. ‘수술을 해도 자연 분만하고 큰 차이가 없겠지?’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자연분만이 좋다고 해도 결국 유전적인 요소, DNA의 힘을 넘지는 못한다는 결론에 냈기 때문이다. 자연분만을 통해서 좋은 박테리아를 받게 되어 면역력이 상승하고 비만이 될 확률이 줄어들 수는 있어도 유전적으로 비만이라면? 또는 면역력이 낮다면? 자연분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될 확률이 높고 잔병을 많이 치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아이가 비만이 되더라도 원망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비만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열성 인자를 내 아이에게 그대로 유전적으로 물려줄 가능성이 많다고 봤다. 이 모든 것을 자연분만으로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적으로 산모가 덜 부담스러운 쪽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많은 남자들이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들로 아내에게 부담을 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사실 남자들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남자들이 나쁘거나 임신한 아내를 힘들게 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에 검색이라도 좀 하고 임신한 아내만큼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공부를 하는 게 좋지 않냐’라고 물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남편들이 요즘 상당히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다르기에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런 남편들은 다른 부분에서 채워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창 시절부터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아내는 제왕절개를 택했다. 아내도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마지막까지 갈등을 했다. 병원에서 원래 받아준 예정일에 제왕절개로 우리의 아들이 태어났다. 수술이므로 나는 수술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벽에 걸린 모니터가 전하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지금 분만/수술 중인 산모의 진행과정을 보여주었다. 수술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뜨자 나는 대기실에서 나왔다. 아기가 먼저 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까이 다가갔다. 아기는 팅팅 불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고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아기는 오른쪽 눈을 떴다. 그리고 인사라도 하는 듯이 오른쪽 손을 움직였다.


내가 옆에서 부르니 실눈을 뜨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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