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Nov 06. 2020

너를 보내기가 아쉬워.

2020년 가을아~ 안녕~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 나는 물 한잔을 마시며 뒷베란다로 향했다. 유리를 관통한 찬기운이 피부에 잔털들을 깨웠다. 의식은 '빨리 이불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눈은 벌써 지면을 가득 매운 낙엽들에 고정되어 있었다. 밤새 낙엽비가 내린 건지 어제에 비해 맨몸을 드러낸 나무들이 가여워 보였다.


올해처럼 가을과의 이별이 아쉬웠던 때가 또 있었을까? 

봄, 여름엔 코로나 19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와 딱 달라붙어 있었다. 아이의 온라인 학습과 과제를 마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나만의 시간은 말 그대로 사치라 생각될 정도였다. 그나마 나뭇잎들이 하나둘 물들어 갈 때 즈음  매일 등교하라는  학교의 통보를 받고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가 교문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는 손을 잡고 낙엽 터널을 걸었다.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들어주도 뒤돌아섰다. 이어폰으로 어제저녁에 가배 방(가사를 필사하는 온라인 모임)에서 배달된 노래를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면 내 옆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쉼 없이 말을 걸어왔다. '이 순간을 기억해줘. 기억해줘. 기억해줘.'라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으로 가을을 담아보려 했지만 그 빛을 사진으로 담기는 불가능했다.


작년 이맘때, 가을을 만끽하러 산으로 들로 남편의 휴일마다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많은 인파에 밀려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웠는데... 아침에 걷다 보면 거리에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이 가을이 모두 내 것인 것 마냥 심장은 콩콩 뛰었다. '왜 작년에는 몰랐지? 매년 가을 이렇게 예뻤을 텐데... 어머 코스모스도 있네?' 코로나 19로 여행도 자유롭게 못 간다고 툴툴거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한동안 가을을 가슴에 품으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머리를 무겁게 하는 상황들이 몇 가지 떠올랐지만 다 잘 해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났다. 마스크 안으로 배시시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느껴졌다. 모두 다 가을이 내게 준 소소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가을의 마지막 숨결을 오늘도 느껴보았다.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려는 가을에게 나는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가을아~ 고마워. 기억할게. 2020년 올해 너를...'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는 글씨가 당신에게 힐링이 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