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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r 27. 2021

깁스를 하고서라도...

예술적 감성 회복하기.

신체 부위 중 있는지 없는지 평소에 관심도 없던 녀석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다.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 전, 커다란 책이 오른쪽 새끼발가락 위로 떨어지면서 '나 여기 있었어요.'라고 소리쳤다. 어찌나 큰 외침이었는지 머릿속은 노래졌도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 후 땅을 디딜 때마다 '으윽' 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날 응급실에서 새끼발가락에 금이 갔다는 의사의 소견. 내 짧은 생각으로는 발가락 두 개만 고정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마치 발목이라도 부러진 것처럼 종아리까지 두꺼운 옷이 입혀졌다. 뚜벅뚜벅 집까지 걸어오면서 오른발을 보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참 별일이 다 있네.' 


창밖은 봄기운으로 날마다 변하고 있는데 나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베란다에서 밖에 핀 꽃들만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다. 그러다 때마침 밖에 나갈 구실이 생겼다. 그것은 "예술적 감성 회복하기" 글쓰기 미션. 


1. 천천히 걷습니다. (산책) 

2. 벤치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봅니다.

3. 복잡한 생각을 버립니다.


이 미션을 완수하기에 하늘도 바람도 꽃들도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다만 깁스를 한 오른 다리만 빼고 말이다. 


"엄마 공원 걷고 싶어. 같이 가줄래?"

"음... 그럼 내 왼손 잡고 걸어요. 엄마."

든든한 아드님 덕분에 나는 벚꽃이 핀 공원을 나갈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엄마 좀 천천히 걸어요. 넘어진다니까요."

"사진 찍게 저기 서봐 어서~ 벚꽃이 다 폈네. 너무 예쁘다 예뻐. 이렇게 예쁜 꽃 봤어 못 봤어?"

"꽃보다 엄마가 더 이뻐요."


벚꽃에 푹 빠져있는 나를 보며 아이는 6살 때부터 했던 말을 또 나에게 해주었다. '해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엄마가 꽃보다 더 이쁘다니... 그 말이 빈말인 줄은 알지만 배시시 내 입꼬리가 사정없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조금 더 크면 꽃보다 예쁜 엄마가 아니라 꽃보다 예쁜 여자 친구라며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즐기겠노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아이와 사진을 찍고 한참을 벤치에 앉아 벚꽃비를 맞았다. 꽃잎 하나 잡겠다며 이리저리 뛰는 아이의 모습 너머로 누군가 폰으로 틀어 놓은 <Yesterday once more>이 배경음으로 깔리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가 전혀 방해되지 않았던 그 순간 나의 예술적 감성이 서서히 회복됨을 느꼈다. 금이 간 새끼발가락과 함께...


2021년 벚꽃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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