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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pr 25. 2021

내 생애 첫 온라인 강의

- 나도 할 말이 있다고요. (필사와 글쓰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봄비가 지난 자리에는 지독한 감기가 남았다. 열이 38도가 넘어가면서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라는 불안함이 커졌다.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열제를 연신 삼켰다. 겨우 열이 내린 후 찾은 병원에서 몸살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두통이 지나간 자리에 기침과 콧물이 뒤따랐다.


내 장점이라면 장점인 목소리가 사정없이 갈라져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까지 감기에 걸려 학교를 쉬어야만 했다. '5일 후에는 무조건 나아야 할 텐데... 어쩌지' 

집에 있는 온갖 차를 꺼내 마셨다. 생강차, 모과 차, 배도라지즙, 따뜻한 물까지... 그리고 매일 병원에 발 도장을 찍으며 호흡기 치료와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내가 생애 첫 강의를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내게 2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취소하기에는 민폐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보자. 내용이 괜찮다면 모두들 이해해 주실 거야.'라는 생각을 굳혔다. 2장의 강연 골자와 ppt를 만들고 시간 체크를 하면서 알았다. 내 목소리가 지금 -골룸-이라는 것을...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을 듯하여 두 번째 배정된 강연 순서를 처음으로 바꾸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 안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시계 초침보다 크게 뛰는 심장소리. 코로나로 온라인 줌모임이 익숙했지만 내게는 공식적으로 첫 발표이자 강의였다. 한 달 전 문우님들이 강의를 듣고 나도 해 볼 수 있지 있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신청했다. - 나도 할 말이 있다고요.-라는 작은 무대에서 내가 발표할 내용은 '필사와 글쓰기가 내게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켰는가'였다. 


서른 명이 넘는 분들이 내 목소리는 듣는다고 생각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차가워진 손과 발은 연신 주물렀다. "반갑습니다." 달달 떨리던 음성은 2분 정도 지났을 때에야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에도 문우님들은 듣기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의 경험담을 즐거운 마음으로 발표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다. 단지 하나를 하면 묵묵하게 해낼 뿐이다. 시, 좋은 문장, 책, 노래 가사를 필사한 15권의 노트와 글쓰기 모임을 통해 한편 두 편 모인 300편의 글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 일정 시간을 뚝 떼어내야 했고 기꺼이 시간을 사야 하는 일이었었다. 


연신 따뜻한 물을 마신 덕분인지 기침은 나오지 않았다.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강연 골자를 책상에 내려놓았을 때 기분 좋은 희열로 가슴은 충만해졌다. 생애 첫 줌 강의를 마친 것이다. 필사와 글을 쓰는 동안 '책을 써야겠다'라는 한 번도 품지 않았던 꿈이 생겼다. 그 꿈을 선언하기 위한 내 첫 줌 강의가 아니었을까? 비록 컨디션은 꽝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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