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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pr 25. 2021

꼭 살고 싶어서...

인생의 끝을 향해가고 있는 가족에게...

감기약을 처방받아 친정에 잠깐 들렀을 때 엄마는 소파에 등을 보이고 앉아계셨다. 평소 귀가 예민한 엄마께서 현관문의 버튼 소리를 못 들으셨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곁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갔을 때에야 나는 엄마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왜 울어"

"..."


눈물을 훔친 엄마는 휴대폰을 내게 내밀었다. 건네받은 폰 화면에 빽빽한 문자가 보였다. '사랑하는 왕 언니~'라고 시작되는 문자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 역시 눈물로 마스크를 적시기 시작했다. 문자 중간중간 삶에 대한 이모의 강한 열망이 읽혔다. 살고 싶다고 꼭 살고 싶다고...


작년 겨울 막내 이모는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 여기저기 장기에 퍼진 암세포는 이미 수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항암치료에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항암 치료가 다 끝나고 집에서만 생활하던 이모의 통증이 요즘 극에 달하고 있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모는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자궁암 수술에 1년 후 말기 암으로 재발하는 동안 심신이 지쳐버린 이모부는 이모의 마지막임을 직감했나 보다.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이모는 삶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 버티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정말 마지막일 테니까...


40대 이모가 얼마나 아름답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가족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걱정해 주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꼭 나아야 한다며 웃었던 이모, 어쩌면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지금까지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암이란 녀석은 끔찍하고 지독한 놈이었다.


눈물을 흘리던 엄마와 나는 동시에 한숨을 토해냈다. 내게는 또 한 명의 엄마이자 친언니나 다름없는 이모를 나 역시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엄마에게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로 며칠째 나는 가만히 있으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입맛이 뚝 떨어지고 평소에 즐거웠던 일들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 밤 이모는 얼마나 아파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 내가 이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모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만이 나를 좀먹고 있다. 새벽 3시 말기 암과 관련해 인터넷을 뒤지다 질문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생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위로를 베풀어 줄 수 있는가?"

환자가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들을 잘 들어주십시오.
가능하다면 환자가 원하는 것을 해 주려고 노력하십시오.
환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인생에서 중요하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환자가 말한다면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환자가 기운이 없어서 짧은 대화밖에 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십시오.
생의 끝이 다가올수록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지금 이모의 입장이라면 가장 필요한 건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지 못한 늦은 밤 나는 벽에 기대어 휴대폰 메모장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친필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눈물로 얼룩진 편지가 언제 이모의 손에 도달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이모가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랑하는 이모...라는 글자를 쓰고 30분을 넘게 눈물을 흘린 다음에야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문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얼마나 내가 이모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지... 이모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적었다. 요즘 자주 이모가 나오는 꿈을 꾼다고도 적었다. 보고 싶다고 옆에 있었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고... 동이 터오는 창밖을 보며 나는 그 문자를 이모에게 전송했다.


- 내 새끼가 안아줘서 다 나은 것 같아. 고마워-라는 문자를 받고서 또 눈물을 흘렸다. 고약하고 몹쓸 암덩어리들이 기적처럼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모의 고통이 덜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깊이 감사할 일이다. 한 번씩 통증이 오면 삶의 애착으로 가득 찬 이모도 '빨리 끝났으면...'하고 바란다는 말을 엄마에게 들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모와 통화를 하고 싶지만 기운이 없어서 인지 누구의 전화도 받지 못한다.


나는 매일 이모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모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이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아직 눈물로 이모를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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