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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pr 30. 2021

횡단보도에 떨어진 물건.

아버지와 아들.

"오늘 아침에는 엄마가 바래다주면 안 돼요? 딱 큰 건널목까지만... 응?"

"그럴까?"


밤새 심상치 않은 강한 바람이 유리창을 요란스럽게 때렸다. 귀가 밝은 아이와 나는 밤잠을 설쳤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는 등교 준비를 마치며 내게 부탁을 해왔다. 요즘 혼자서도 등교를 잘했기에 주는 상처럼 나는 아이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운동화를 신었다. 강한 바람이 스친 인도에는 꼬마 살구며 매실 열매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엄마 불쌍하다. 이 녀석들은 나무 엄마를 일찍 떠나버렸네."

"익어서 딸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짠하다. 그렇지?" 


아들의 손을 잡고 건널목까지 금세 도착한 나는 손을 놓기 싫어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교문까지 바래다준다고 했다가 '여기까지 약속했잖아요.'라는 아들의 말에 멋쩍은 듯 웃었다. 언제는 아쉬운 건 아들보다 엄마인 나다. 아들이 교문에 들어갈 때까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교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며 크게 두 번 손을 흔들어주는 아들에게 나도 크게 세 번 손을 흔들었다. 


그때였다. 내 앞으로 두 사람이 휙 스쳐 지나갔다. 족히 180은 넘어 보이는 남자와 남자의 손을 잡은 꽉 잡은 작고 왜소한 남자아이는 언뜻 보기에도 아빠와 1학년 학생처럼 보였다. 신호 대기 숫자가 5 정도 남아 있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급했을까? 아빠의 큰 보폭에 따라 종종걸음으로 뛰는 아이의 발이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아들이 학교로 들어갔으니 나는 뒤돌아 집에 가면 그만이었지만 계속 그 작은 아이가 내 눈길을 부여잡고 있었다. 신호등 숫자가 2가 남았을 때 아이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작은 물체가 '툭'하고 떨어졌다. 떨어진 물건은 바닥과 충격으로 조개처럼 벌어졌다. 둘 다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아빠와 아이는 이미 횡단보도를 다 건너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주위에 학부모들과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아 그 모습을 나와 함께 지켜보았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휴대폰 떨어졌어요." 

하지만 내 목소리는 나를 스치는 버스와 트럭의 소음으로 묻혀버렸고 나는 벌어진 휴대폰을 부디 자동차가 지나며 부수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내가 다음 신호까지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아이와 아버지는 이미 교문 가까이 도달했다. 씽씽 지나가는 차들의 바퀴가 휴대전화를 집어삼키려 했지만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비키고 지나갔다.


불과 몇 분 안 되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파란불이 되자마자 나는 횡단보도 중간으로 뛰어가 휴대전화를 잡아들었다. 그때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이곳저곳 흠집이 많이 난 휴대폰 액정에는 -아빠-라는 글자가 깜박였다.


"여보세요. 여기 횡단보도인데 아이가 뛰어가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렸어요. 뒤돌아 보시면 제가 보일 거예요."

"아~ 잠시만요."


교문 앞에서 아이와 아버지가 다시 뛰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횡단보도 하나 사이로 초록불을 기다리는 아이의 표정은 울상이었다. 아무래도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야단을 맞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에 안쓰럽게 보였을까? 분명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의 눈에서 슬픔이 읽혔다. 초록불이 되어 내가 먼저 뛰어가 아이의 아빠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다.


"어서 인사해야지. 감사하다고"

아이의 얼굴만 한 커다란 손이 아이의 뒤통수를 때리자 아이의 허리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숙여졌다. 

"깨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치? 학교 조심히 가~" 나는 아이의 눈높이까지 허리를 숙여 아이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 모습에도 아이의 아빠는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아이의 손을 끌어당겼다. 좋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오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살면서 몇 번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이상하게도 상대방의 태도에 나는 조금 상처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표현보다 마치 내가 그 물건을 훔친 것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는 눈빛에서 받는 상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물건을 그대로 두지 못했다. 왜일까? 어쩌면 물건을 잃어버리고 가슴 졸이며 찾던 내가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바쁜 일이 있었겠지. 그래도 너무 다행이야. 휴대폰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망가지지 않아서... 주인에게 돌아가서...' 아빠의 짜증 섞인 눈빛보다 아이가 편하게 학교에서 지낼 그 모습만 마음에 담기로 한다. 분명 휴대폰을 잃어버렸거나 차가 깔고 가버렸다면 아이는 아빠에게 많이 혼났을 거란 느낌적 느낌이 들었으니까... 오늘 부디 아이의 안도감이 마음의 온도가 1도 정도는 올라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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