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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Dec 18. 2021

크리스마스와 도둑질


인생에서 화이트로 쓰윽 문대버리고 싶은 기억이 불현듯 선명해질 때가 있다. 지저분하게 녹아내리는 눈덩이처럼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불편함. 그 감정은 3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12월이면 어김없이 반복된다.




남도의 끝자락에는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모호했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은 손에 꼽았으니까.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생명의 기운보다 돌들이 더 많아서 였는지도 모른다. 


전교생이 고작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계절을 방학으로 알 수 있었다. 정해진 약속처럼 겨울 방학은 12월 20일과 21일 둘 중에 하나였다. 방학이 시작되면 동생과 나는 어김없이 외할머니 댁으로 일주일 즈음 맡겨졌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은 온통 반짝임이었다. 마치 시골집에서 보던 별빛을 지상으로 옮겨 놓은 듯 작은 전구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곳. 어딜 가나 캐럴이 울려 퍼졌다.



"아이고 내 새끼. 많이 춥지. 오느라 고생했네잉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고등학생이었던 이모는 내가 오면 기꺼이 방을 양보해 주었다. 이모 방 문을 열면 은은한 모과 향이 나를 반겼다. 늘 딱딱한 방바닥에서만 자던 내가 이모방에 침대에 누우면 구름 위에 둥 떠있는 것만 같았다. 침대만큼이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까만 그랜드 피아노 오르골이었다. 피아노 뚜껑을 열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손톱 크기의 작은 색 돌들이 빛을 발했다. 돌들 사이사이에 액세서리들도.



"우와. 이모 이건 너무 예쁘다."

"여기 있는 동안 차고 있어도 괜찮아."



2cm 타원형의 브로치에는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작은 소녀가 새겨져 있었다. 내 평생(고작 9년이었지만) 이렇게 예쁜 브로치는 처음 보았다고 자신했다. 날카로운 침에 손이 다치지 않도록 이모는 내 오른쪽 가슴에 조심스럽게 브로치를 달아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습관처럼 그 브로치를 손가락으로 만지고 만지고 또 만졌다. 밥을 먹다가도,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잠들기 전까지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크리스마스에 이모가 우리를 데리고 시내에서 가장 유명했던 돈가스를 사주었을 때에도 내 손가락은 브로치의 끝을 매만졌다. 할머니 집에서 자던 마지막 날까지도.



"그게 그렇게 좋아? 주고 싶은데 이모한테도 중요한 거라... 미안해. 비슷한 걸로 이모가 사줄게"



왜 그 말이 그렇게도 서운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처음 브로치를 만났던 피아노 오르골 안에 브로치를 빼놓았다. 엄마가 오셔서 우리의 짐을 챙기는 순간에도 눈길은 이모 방안 오르골에 고정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코트 주머니에서 도저히 손을 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모의 브로치를 훔쳤다.



처음엔 단순히 옆집 윤경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브로치를 가져오면 행복할 줄 알았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집에 돌아와 브로치를 작은 손수건에 돌돌 말아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으니까. 생애 첫 도둑질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모의 물건이었다는 사실이 그 죄책감이 나를 좀먹어갔다. 하루에도 수천 번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등짝 스매싱이 무서워 주저했다.



'크리스마스에 도둑질이라니... 신께서는 나를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서 밤마다 울었다. 그리고 사흘을 흘렀을 무렵 엄마는 나를 조용히 불렀다.



"이모랑 통화했는데... 혹시..."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 수도꼭지가 열렸다. 엄마는 적잖게 놀라신 것 같았지만 나를 혼내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울음 끝이 옅어질 즈음 엄마는 날을 꼭 안았다. 마치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리고 할머니 댁에 전화를 걸어주셨다. 직접 이모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말이다.



"이.. 모 미안해... 잘못... 했어." 말인지 울음인지 모를 음성을 더디게 나왔다. 누가 봐도 잘못한 건 나인데 이모도 같이 흐느끼고 있었다.

"그냥 너 주는 건데... 이모도 선물 받은 거라서 너한테 주지 못했어." 우리는 그날 수화기를 안고 오래 울었다.



다음 할머니 댁 방문에 이모에게 브로치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용서를 빌었다. 이모는 브로치를 가지라고 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게 예쁘게 보이지도 만지고 싶지도 않은 물건에 불과했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도둑질. 반성은 길었고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기가 되면 나는 그 브로치를 떠올렸다.




이모가 눈을 감을 때까지 나는 이 이야기를 이모에게 하지 못했다. 


'이모 기억해? 30년 동안 한 번도 우리 이 이야기 안 했잖아. 나 그때 이모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어.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진짜 나 나빴지. 미안해 미안해'


'내 새끼. 많이 힘들었지? 이미 모든 건 지나갔어. 그러니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 우리 다시 꼭 만날 테니까.'


지금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이모가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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