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May 26. 2023

나를 울린 '새 박사님'


도심의 가장자리에 살다 보면 덤으로 얻어지는 행복이 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새들의 지저귐을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소리의 그림자를 찾아보지만 숨은 그림 찾기보다 어렵다. 운이 좋아 날아가는 새들을 포착해도 이름을 알리 없다. 배가 노란 새, 꼬리가 긴 새, 너무 빨라 눈 깜짝할 새, 나는 그들을 모두 '이쁜 새'라고 부른다. 내가 고작 이름을 똑같이 부른다고 그들이 부르던 노래를 멈추거나, 당장 땅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으니까.


며칠 전, 갑작스럽게 내린 봄비 덕분에 약속이 취소되어 기분이 붕 떴다. 창밖에서는 '이쁜 새'들은 어김없이 서로 지저귀며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비가 오면 땅을 뚫고 나오는 벌레들이 많으니 빨리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소리의 높낮이가 현란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고 싶지 않아 책을 폈지만 몇 번이고 같은 문장만 읽혔다. 과감하게 책을 덮고 tv 리모컨을 잡아들었다. 추천받은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비와 커피 그리고 영화. 쓰리 콤보 환상 조합 아니겠는가.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서 전동 휠체어를 탄 노인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보며 휠체어에 고정된 카메라를 왼손으로 연신 눌렀다. 영화를 찾아 리모컨을 누르려는데 상단에 프로그램 이름과 부제목을 보고 동작을 멈췄다. "특종세상 - 국가대표 새 박사 윤무부, 뇌졸중 이후 사라졌던 사연" 남자가 얼굴을 들자 내가 알고 있었던 분이 맞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이자 다양한 시사 프로와 예능을 통해 익숙했던 분. 한동안 내 기억 속에서 잊혔던 분을 화면 속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나는 몇 번이고 크게 심호흡을 되풀이했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불편한 박사님은 온전히 아내의 도움을 받으셨다. 24시간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평소 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외출 후 박사님의 옷을 갈아입히고, 끼니를 챙기고, 욕실을 드나들고, 아내가 없었다면 그분의 삶은 산산이 망가졌을 테다. 2006년도에 강원도 철원에서 새를 보다 뇌경색이 왔다는 박사님. 응급실에서 이미 늦었다는 의사의 말에 장례 준비까지 하셨다는 말을 듣고 아빠가 쓰러졌던 그날을 떠올랐다.




3년 전, 친정 아빠도 박사님과 똑같은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혈압이 높다는 이유로 눕지도 못하고 나를 보자마자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시던 아빠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박사님은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지만 아빠는 반대였다. 왼쪽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이 흉하게 굳어버렸다. 언어를 담당하는 뇌기관이 까맣게 변해 삐걱삐걱 거친 소리가 냈다.


불편한 몸을 전동 휠체어에 싣고 첫사랑 '후투티'를 촬영하기 위해 박사님은 경주로 떠났다. 물론 아내에겐 철저히 비밀로 한 여행길이었다. 박사님의 도전에 촬영팀이 따라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아빠는 집 근처 운동도 극도로 조심하시는데 정말 대단하시구나.' 꼭 후투티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분을 아니 전동 휠체어를 응원했다. 무사히 도착해 드디어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르는 후투티를 찍었을 때 탄성이 흘러나왔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내 눈에서 수도꼭지가 열렸다. 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열정이 박사님을 일으켜 세운 것처럼 아빠도 그런 꿈이 품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몸이 마비되었던 박사님은 꾸준한 재활 운동으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지만 그분의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회복이 어려워요. 왜냐면 거의 낫지 않으니까. 나는 새 때문에 죽으라고 운동을 했어. 새를 봐야 하니까. 새가 없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1년 동안 콩 100개를 하루 종일 젓가락으로 집어서 옮겼어요. 나 고생했어."


아빠도 내게 똑같이 말씀하셨다.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몸소 느낀다고. 걷히지 않을 안갯속을 평생 헤매는 느낌이라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이제는 멈춰야 할 것 같다고. (아빠는 영어 강사셨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를 꾸준히 공부하셨으며 유도 합기도 태권도 등 공익 10단의 단증을 보유하실 정도로 건강하신 분이셨다.) 아빠의 굳어버린 몸 보다 삶의 불꽃이 꺼진 것 같아 그것이 더 가슴 아팠다.


아빠에게 "새"가 있다면, 그 희망이 아빠를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퉁퉁 부은 눈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후투티를 찍으러 여행길에 오른 새 박사님의 여정을 들려드렸다. 아빠는 재활 후 지금은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으니까 그분보다 훨씬 나은 입장이라며 목소리에 열을 올렸다. 수화기를 타고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답변이 없으셔도 나는 오랫동안 창밖에서 지저귀는 '이쁜 새'처럼 조잘거렸다. 아빠의 두 번째 인생은 이제 시작이라고 간절히 믿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호호 할머니가 된 솜뭉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