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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Dec 31. 2023

잘 되는 병원은 다 이유가 있지.

파열된 손가락 인대 수술 그 후.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주섬주섬 점퍼를 벗어 가방과 함께 바구니에 넣고 뜨끈한 침대에 바로 누었다. 물리치료사는 적외선 치료기를 손에 맞춰주고는 "뜨거우면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며 한마디를 더 추가했다. 눈에 좋지 않으니 빨간빛을 보면 안 된다고. 내 눈빛이 미심쩍었는지 아예 적외선 치료기의 머리를 돌려주고서야 자리를 떴다. 20여 분간 눈을 감고 굳은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였다. 오늘 운동치료는 조금 덜 아프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수술을 예약한 날. 새벽에 일어나 현장학습 가는 아이의 도시락을 쌌다. 손도 아픈데 사서 보내라는 남편의 잔소리는 저만치 던져두고 김밥과 샌드위치를 싸며 불안한 마음을 다스렸다. 전신마취 수술이라 혹시 모를 응급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두려움 보다 매번 수술할 때마다 오는 과호흡이 더 무서웠다. 도시락을 가방에 넣다 식탁에 앉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내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외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잘 다니겠다고 그러니 엄마는 수술만 잘 받으라고.


미리 남편과 입원 수속을 마치고 코로나 검사 후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음날 해외 출장을 가는 남편의 얼굴은 이미 흙빛에 가까웠다. 수술받는 당사자와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사람 중 누구의 마음이 더 무거울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양 갈래로 머리를 묶어주던 간호사가 남편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머리 이렇게 묶으니 학생 같은데요?" 

"그러게요. 중학생 같죠?" 수술실로 가는 동안 내 머리를 묶어준 간호사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무슨 답변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긴장한 내 손을 꼭 잡고 있던 남편이 내가 할 답변을 대신했으리라.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다. 까만 모니터 가득 하얀 손가락뼈가 기괴하게 나타났다.


"여기 왼쪽  손가락과 비교해 보면 뼈와 뼈 사이가 많이 벌어져있죠? 말려 올라간 인대를 찾아서 실로 이렇게 ~" 뼈 사이 까만 공간을 빨간 선이 가로질렀다. 마치 그림판에 그림을 그리 듯 의사는 동글동글 빨간 동그라미를 만들어 "그리고 여기 단추를 달 겁니다."라고 말했다. 단추를 달 거라고?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5주는 하고 있어야 하니까 많이 불편할 거요. 지금까지 아팠는데 조금만 더 참는다 생각합시다. 얼마나 아팠을 거야. 참말로." 처음 만났을 때와 동일하게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아니 내 속상함을 어루만져 주었다. 푹 꺼지는 한숨과 함께 그는 내 아픈 손가락을 잡았다. 


"이만큼 봉합할 건데 수술 자국은 남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요. 금방 끝날 거요. 이쁘게 만들어봅시다." 수술방으로 안내해 주던 간호사와 동일한 따스함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수술실 베드에 눕자 간호사들이 미소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이건 다리에 부종을 생기지 말라고 주무르는 역할을 한다며 발에 찍찍이를 붙였다. 마취에 들어가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음성은 "걱정하지 마세요." 눈을 떴을 때 내 몸뚱이는 이미 병실 안이었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에 몸이 바르르 떨렸다. 


"너무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내 상태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간호사를 호출했다. 아니나 다를까 과호흡 증상이었다. 혈압은 60 이하로 뚝 떨어졌다. 수술을 하셨던 주치의 선생님과 마취과 선생님 그리고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통증으로 몸부림치던 내 곁에 오래 머무셨다고 나중에 남편은 말해주었다. 무통 주사는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마약성 진통제와 진정제가 몸에 흘러들어왔다. 다시 의식을 차렸을 땐 커다란 산소통이 내 옆에 놓여 있었다. 일주일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간호사들은 밤낮으로 나를 체크했다. 매일 꼼꼼하게 손가락을 소독해 주고 아끼지 않고 약을 발라주었다. 퇴원 후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다음 치료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하셨다. 


"재활하면서 많이 울 텐데 어쩌지요? 그래도 열심히 운동해야 예전처럼 손가락 쓸 수 있으니 힘내 봅시다."

"네 그럴게요."


내가 수술받은 병원은 9시 진료 시작 전 이미 많은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1시간에서 길면 3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접수하는 직원부터 간호사, 의사, 재활 치료사까지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한다. 환자와 보호자의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는 얼굴은 비단 나만 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2달 가까이 매일 재활을 받고 있지만 한결같이 웃으며 대해준다. 사고 후 처음 갔던 병원에서 얼마나 크게 절망했던가. 정상적으로 손가락이 굽어지는데 6개월에서 1년의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으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잘 되는 병원은 다 이유가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결국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의료진이 내가 찾은 답이다. 




"이제 운동 치료할까요?" 치료사는 내 손을 잡았다가 "제 손이 차네요. 잠시만요." 손을 놓는다. 자신의 양손을 쓱쓱 문질러 체온을 높인 다음 잡더니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 마세요. 오늘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알려드릴게요."라고 말한다. 손목에서 손바닥 그리고 다른 손가락들까지 꼼꼼하게 꾹꾹 누른다. 이제 새끼손가락을 살며시 눌렀다 힘을 빼고 숨을 돌리라고 말한다. 손바닥을 쫙 펴서 살살 문지르다 "한 번만 다시요" 치료사가 몇 번이고 운동 치료를 반복하면 어느새 내 등과 이마에 땀이 밴다.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찔끔 나오지만 견딜 수 있는 건 "내일은 오늘보다 더 굽힐 거예요."라는 희망적인 치료사의 말 덕분이다. 

그 따스한 격려 덕분이다. 


깨끗하게 사라진 수술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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