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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l 04. 2020

찢긴 나를 꿰매는 중입니다.

매일 글을 쓴 지 200일.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새벽 4시. 암막 커튼 사이로 푸른빛이 창문에 어린다. 이불을 차고 애착 인형을 안고 자는 아이의 배에 인견 이불을 덮어주었다.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더 자야 하건만 3시 반에 깬 나는 30분 뒤척이다 이내 포기했다. 침대 해드에 등을 기대앉아 핸드폰을 보다 눈이 따끔거려 저만치 치워두었다. '아아 벌써 1년의 절반이 갔구나.'

2020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세계적인 전염병이 문밖에서 꿈틀거리며 돌아다닌다. "여러분이 조심해야 할 나는 그 녀석입니다."라고 형광물질이라도 발산해주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는 공포 그 너머에 사람과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의 거리까지 추가되었다.


전례 없는 코로나도 나와 가족과 이웃을 바꿔놓았지만 2020년 나를 가장 많이 바꿔놓은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작년 12월 매일 글쓰기를 한지 이제 200일. 뭐든 써보자고 분명 쓸 것이 있을 거라고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안타깝게도 멍하게 있는 시간은 즐거움보다 고통이었다. 쓸 이야기가 많다고 믿었는데 마음뿐이었다. 보기 좋은 착각, 나에 대한 과대평가였으며 교만이었다.


철저히 아래부터 쌓아가야 했다. 건물을 새울 때 땅을 파고 기초 공사부터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기초공사는 "매일 쓰는 일"이었다. 몸이 힘들고 아파도 하루 3줄 이상은 쓸 것. 조잡한 글이거나 감정 널뛰기하는 일기 거나 혹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문 대잔치라도 일단 쓰고 자는 것을 1번 목표로 달렸다.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글쓰기 체력은 없다는 말. 하루 30분이라도 뭔가를 쓰라는 그 말 선배 작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혼자였으면 어려운 일을 감사하게도 문우들과 함께 격려하며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딱히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 글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은 예전보다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의 부족함이 두려움을 몰고 온다. 브런치에 입성한 지 두 달인 초보는 운 좋게 33편의 글 중 12편이 메인에 올랐다. 사실 부끄럽다. 어디 가서 글 쓴다는 말은 못 하겠다. 브런치에는 정말이지 주옥같은 글을 뽑아내는 작가님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왜 쓰는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에 대한 물음표를 계속 던지도 있는 초보이다.  

최근 글쓰기 합평을 하면서 더욱더 "나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한 밤에 꺼내보곤 한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서야 어렴풋이 그 답을 찾은 것만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칭찬과 공감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오롯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친정 엄마는 나의 삶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유아기 때, 그리고 학교생활이 즐겁지 못했지. 그 시절에 성격도 방향이 잡히는 건데 너의 삶은 성년에 이르기까지 충격적이었잖아." 엄마의 말씀처럼 나의 과거는 딱 하나의 단어 "충격"으로 평가되었다. 일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아픔, 시련, 그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어리석고 나쁜 시도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과거 속에 타르처럼 끈적거리고 불쾌한 냄새를 풍겼다.


찢긴 과거만 보며 나는 자신을 무참히도 학대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었기에 무언가를 꿈꿀 수 없었던 때였다.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는 찢긴 조각들을 내 앞에 용기 내어 늘어놓았다. 막상 바닥에 내려놓고 보니 각각의 모양과 색깔들이 참 볼품없었다. 너덜너덜 거리는 작은 조각부터 오물이 뭍은 헝겊까지 아주 다양했다. 옷 수거함에 넣어도 수거해 가지 않을 천조각을 하나로 모아 세탁하고 말리고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과거 퀼트를 배울 때처럼 바늘 한 땀에 글자 한자, 두자, 세자... 이어놓고 보니 근사하진 않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래. 이렇게 찢긴 너도 쓸모가 있을 거야.'

자르고 맞추고 꼬매다 보니 알겠다. 내게 글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간 글을 쓰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못한 글은 조용히 쓰레기 통으로 향했지만 괜찮았다. 다음날이면 나는 또 글을 썼으니까... 아직 10프로도 못 보인 내 조각들이 언제 글로 다 꿰매 질지, 그 완성품은 어떤 모양일지 지금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꾸준히 이어가 보기로 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보다 나를 어루만지며 꾸준히 글쓰기를 이거 나가고 싶다. 결국 내게 글쓰기는 "치유"가 1번이었기에 오늘도 나는 내 천조각들을 하나씩 꿰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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