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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04. 2021

미국에서 운전하기, 그리고 문화 이야기


평일에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서 처음 혼자 운전을 시작하곤 쭉 운전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작은 차를 운전하다 미국에서 와서 7인승짜리 큰 차를 모니 어색하기도 하고 운전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확실히 운전은 미국이 편하다. 주차 공간이 넓고 차선 간격이 넓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운전이 편한 더 큰 이유는 운전자들의 여유와 배려다. 


차선을 바꾸기 위해 깜빡이를 켜면 십중팔구 뒤에서 오는 차가 속도를 늦춰준다. 급하게 끼어들거나 차선을 바꾸는 차들이 거의 없어서 시나리오가 매우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오늘 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반대 차선에 차가 계속 들어오는 상태로 반대 차선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파란 불이 되면 차가 다 빠지려나, 하며 기다리던 차에 반대편 차들이 내가 좌회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잠시 어리둥절하다 그들에게는 들리지도 않겠지만 "땡큐!" 하며 좌회전을 했다. 한국이었다면 특별한 호의처럼 느껴졌을 일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라는 사실이, 그 여유와 매너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웠다. 


여유와 매너의 문화. 남편, 그리고 친한 친구와 이 주제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다, 이곳에 오고 나서는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다시 깨달았다. 얘기하며 생각해보니 정말 조깅하는 사람 말고는 뛰거나 급하게 서두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무빙 워크에서나 에스컬레이터에서조차 뛰는 게 익숙한 풍경이던 한국이 새삼 생경하게 느껴졌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시간의 유연성과 신뢰가 아닐까 싶다. 아닌 직장도 분명 있겠지만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을 봐도 9 - 6로 (원칙상) 일하기는 해도 누가 9시까지 꼭 출근해야 한다든지, 6시까지 퇴근해야 한다고 지침을 주거나 체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바쁜 일이 있거나 가정에 무슨 일이 있거나 아니면 집에서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해서 일주일에 하루쯤은 집에서 일하든, 하루는 오후에 출근하든 아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 


딸을 데리고 Children's Museum이나 동물원, 박물관 등에 종종 가는데 다른 평일이면 보통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이 많지만 금요일 오후엔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이 훨씬 많다. 


약속만 해도 그렇다. 


교수님과의 미팅처럼 공적인 미팅은 정확한 시간을 정하지만,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거나 하면 "6시 이후에 편하게 와" 하는 식의, 느슨한 약속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일분일초에 맞추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근태 관리나 시간 관리를, 한 사람의 성실함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문화와 할 일만 알아서 잘하면 큰 테두리 안에서는 용인해주는 문화의 차이일까. 


다른 하나는 신뢰.


동물원같이 입장권을 구매하고 입장해야 하는 곳에도 그 흔한 표 검사하는 사람이 없다. 아직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이곳에 먼저 살고 계신 분들 이야기에 따르면 마트에서 산 음식이 상했다고 하면 심지어 그 음식을 가지고 가지 않아도 영수증을 꼼꼼히 살피거나 하는 과정 없이 그냥 새로운 물건을 내준단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무수한 일들이 신뢰에 기반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출퇴근 시간도 그런 신뢰에 기반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 큰 성인으로서 9시에 출근하든 9시 1분에 출근하든, 11시에 출근하든 제 할 일은 알아서 잘하고 있으려니 하는 믿음과 신뢰. 성과에 기반해 채용, 해고가 쉬운 노동 유연성도 한몫하겠고 그걸 악용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아직도 이렇게 사회가 굴러가는 걸 보면 그들은 아직 아웃라이어고 그걸 악용해서 얻는 혜택보다 잃게 되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꼭 지켜야 하는 것.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일. 개인의 삶에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한 사회가 놓쳐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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