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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04. 2021

문화, 젠더, 그리고 맘충

최근 할로윈날 남편 학과의 교수님이 자신의 집에서 가족 동반 파티를 열어서 가족이 다함께 갔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학과 내 포닥이나 교수 중에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많고 그 남편이 프리랜서나 다른 직업을 가진 가정도 많다는 거였다. 


하지만 미국 내 한국사회를 보면 거의 십중 팔구는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게 되어 가족이 함께 와서는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보는 케이스다. 


남편의 지도교수 또한 매우 유능한 젊은 여자 교수다. 얼마 전에는 남편 동료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가 바로 복직을 해야해서 남편이 5주 동안 배우자 출산휴가를 받아 아이를 돌보았단다. 근데 너무 힘들어서 얼른 일하러 가고 싶었다고. 


성(sex)이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라면 젠더(gender)는 사회적인 구조다. 젠더가 만들어내는 구조적인 차이. 한국에서도 물론 느꼈지만 그 구조의 차이가 미국에 오니 더 크게 느껴진다. 


딸은 요즘 기차와 차를 좋아하는데, 기차와 차를 가지고 노는 딸에게 이곳의 한국 어르신들이 여러 번 "여자애가 차를 좋아하네? 인형 안 가지고 놀고?" 말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이라 그저 "그러게요!"하고 웃고 말았지만, 특정 분야는 특정 성별의 것, 가정을 돌보는 것은 특정한 성별의 몫이라는 사회적인 통념,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이 쌓여 구조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물론 미국에서도 성별에 따른 급여 차이 등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한국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가사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 육아는 부모 모두의 책임이고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과 적성에 따라 뭐든 해볼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언제쯤이면 한국에도 (미국 사회 내 한국사회에도) 팽배해질 수 있을까. 


최근 지역 내 평가자들 네트워크 이벤트가 있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갔다. 남편도 학과 행사 리셉션에 가야했지만, 내 약속이 먼저 잡혀있던 터라 유모차를 끌고 갔다. 막상 가보니 내가 참여한 이벤트의 주최자 역시 5살짜리 애를 데리고 왔다. "내 애는 남편이 데리고 갔어" 하니, 자기 둘째는 남편과 함께 있단다. 


행사가 끝나고 남편과 만나서 어땠냐고 물으니 다들 아이를 귀여워해주고 아이도 잘 있어줘서 다같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행여 생각없는 '맘충'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식당이든, 백화점이든, 지하철에서든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했던 한국과 달리, 이 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사회의 일원이고 구성원이다. 물론 그만큼 대중장소에서 제대로 행동하는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엄하게 훈육하기는 하지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육아에 참가하는 이들의 저변이 넓어질수록, 맘충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나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면 생각없이 행동하는 '무리들'에 대한 비판은 있을지언정, 그게 특정 젠더를 향한 비판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미국에 왔을 때와 비교해서 보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너무 다른 요즘. 그래서 더욱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딸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여성으로서 딸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큰 롤모델이 될 내 삶의 궤적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성별에 관계없이 마음껏 꿈꾸고 배우고 성장하며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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