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때 하루키 신간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었다.
그중 흥미로운 내용
<2장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일 인용>
-무라카미 씨는 소설 쓰기를 설명할 때 종종 집 한 채에 비유하시는데요. 1층은 가족 모두 모이는 다란한 장소로, 즐겁고 사회적이며 공통의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자기 책 같은 게 꽂힌, 좀더 개인적인 방이 있고요.
-이 집에는 지하 1층에도 좀 음침한 방이 있는데, 그래도 그 정도는 누구든 비교적 쉽게 내려갈 수 있어요. 일명 일본의 사소설이 다루는 것이 아마 이 언저리, 지하 1층에서 일어나는 일이겠고요. 근대적 자아 같은 것도 지하 1층의 이야기. 그런데 통로가 더 밑으로 이어지고, 지하 2층이 있는 게 아닐까. 그곳이 아마 무라카미 씨가 소설 속에서 늘 가고자 하는, 가고 싶은 장소가 아닐까 하는 거죠.
무라카미 - 그리고 제 생각에, 무의식이 거래되는 건 고대의 공간입니다. 고대 혹은 그 이전일 수도 있고요. 제가 '고대의 공간'이라는 말에서 항상 떠올리는 건 동굴 안의 이야기꾼입니다. 때는 원시시대, 인간은 동굴 안에서 공동생활을 합니다. 해가 지면 밖은 어둡고 무서운 지승들이 있으니 다들 동굴 안의 모닥불을 둘러싸고 모이죠. 춥고 배고프고 불안하고.. 그런 때 이야기꾼이 나섭니다. 그 뛰어난 입담에 사람들은 흠뻑 빠져들어 슬퍼하다가, 설레다가, 화를 내다가, 소리내어 웃다가 합면서 곧 배고픔과 공포, 추위를 잊어요. 스토리텔러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제게 전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먼 옛날 누가 "무라카미, 이야기 좀 해봐"하면 "그럼 시작합니다"했을 사람이죠(웃음). 꽤 반응이 좋아서 "그뒤에 어떻게 되는데?"라는 말에 "그건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뭐 이러지 않았을까, 그런 이미지가 제 안에 있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고대 혹은 원시시대 동굴 안의 집합적 무의식 같은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다들 기다리니까 하루 열 장은 꼭 써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고, 내 앞에서 귀 기울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내가 결코 틀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그건 얼굴을 보면 알아요.
소설 쓰기의 비유로 지하 2층부터 지상 2층까지 4단으로 분리한 내용을 연월일시의 4주와 분리해서 읽기 어려웠다. 하루키의 비유와 사주를 엮어보자면 "가족 모두 모이는 다란한 장소로, 즐겁고 사회적이며 공통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지상 1층은 사주로 따지면 일주와 같다. 일시/연월로 나눠서 연월은 사회궁, 일시는 개인궁(가족궁)으로 보는데 일주는 사회와 나의 관계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자기 책 같은 게 꽂힌, 좀더 개인적인 방"인 지상 2층은 사주로 따지면 시주와 같다. 시주는 개인성향의 연장선, 좀 더 내밀한 속내, 제 2자아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간단하게 풀리려면 사소설, 근대적 자아, 에고, 자의식의 범주에 속하는 지하 1층은 월주, 무의식이 거래되는 고대의 공간, 동굴속의 이야기꾼은 연주로 봐야할 것인데 개인과 사회의 공간으로 분류했던 연월/일시가 문득 근대와 고대라는 시간의 개념으로 뒤틀리기 때문에 분류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묘한 것은 근대와 고대라는 시간 개념을 월주와 연주에 대입했을 때 그렇게 어긋나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월일시는 공간적으로 볼 때 연=국가 단위의 공간, 월=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공간, 일=개인적인 가정의 공간, 시=나만의 사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보면 연=대과거, 월=과거, 일=현재, 시=미래 지향성. 그래서 연주를 통해 전생의 대과거를 상상하고 월주를 통해 가까운 전생을 추론하며, 일주를 통해 현생을 파악하며, 시주를 통해 후생을 예측하기도 하는 것이다. 논리를 확장한다면 연주를 공간적으로 지구 단위로, 시간적으로 고대로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거기다 하루키의 팔자까지 염두에 두고 읽으니 그만의 지하 2층~지상 2층의 비유가 그야말로 납득이 갔다.
시일월연
丙壬乙戊
午寅丑子
연월일이 연주의 가장 근원,시초인 子에서 월주,일주인 丑寅 으로 순서대로 점진하며 나아가는 모습. 월간에 있는 乙 상관이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다시 일생의 나이대로 사주를 분류하면 연주는 1~20살의 초년, 월주는 20~40살의 청년, 일주는 40~60살의 중년, 시주는 60살 이후의 말년으로 본다. '하루키 집구조'를 대입해보자면 대략 1~20살에 대과거 전생의 영향으로 무의식이 형성되고, 20~40살에 가까운 전생의 영향으로 자의식,에고가 형성되고, 40~60살 이번 생의 나의 뜻, 의지대로 살아보고, 60살 이후의 말년은 개성,취향,취미,업적으로 장식한다.
석우당의 호신샘의 관법을 빌리면 명리를 칼 융 심리학으로 바라볼 때 천간을 외면 자아, 지지를 내면 자아, 일주를 제1 자아, 시주를 제2 자아로 본다고 한다. 개인의 심리에서 연월의 중요성은 다소 떨어져보이는데 '하루키 집구조' 관점으로는 연월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명리와 심리학의 관계성은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높은데 '하루키 집구조'가 유용한 힌트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