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1 丁巳日

by 은한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가 띵하다. 살고 있는 건물에서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침 일찍마다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드릴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고, 몸에 진동의 여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타의에 의해, 그것도 가장 듣기 싫은 소음의 형식으로 얼마 충족하지도 못한 잠이 강제로 찢겨진다는 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불쾌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리 이불 속으로 숨고 귀를 막아도 그 소리와 진동은 건물을 가득 채우는 듯 했고 집요하게 나를 쫓아다녔다. 소리가 잠잠해져서 다시 잠들라 치면, 바로 그 순간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이를 악 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드릴은 사무적으로 어느 벽을 뚫었겠지만, 드릴 소리와 진동은 귓 속을 파고들어 뇌의 표면에 스크래치를 내는 듯 약한 두통까지 느껴졌다.

일진을 확인해보니 그날은 乙卯日 이었다. 사주를 다 보면 己亥年, 丁卯月 乙卯日 己卯時 였다. 월,일,시에 모두 卯 양인살이 들어왔고, 일진은 乙木 까지 간여지동으로 투출한 그야말로 양인 겁재가 파티라도 벌릴 만한 날이었다. 乙卯 겁재는 내 사주의 己酉 정재,정관을 천극지충한다. 己 정재를 극하니 나의 안전한 소유 영역이 깨지고, 酉 정관을 충하니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파손되었다. 겁재 답게 공사는 절차와 계통을 무시하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진행되었다.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난다는 말도 없었다. 잠결에 卯 양인살은 금방 드릴로 치환되었고, 卯木의 쑤시고 파고드는 힘을 진심으로 납득했다. 일진으로 내 상황을 이해하고 나자 집주인과 공사 인부에 대해 일말의 분노를 덜어내었고, 빈공간에 용서를 한 스푼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다음 날, 그러니까 어제는 丙辰日, 辰土의 여기로 乙 겁재가 남아있어서 어제 못 마친 남은 공사를 진행하는 듯 했다. 이번엔 또 언제 끝날까,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금방 공사 소리가 잦아들어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오늘, 丁巳日 다시 공사 소리에 잠을 깼다. 丁 상관이 다시 기존의 틀을 훼손시켰고, 巳酉合 정관이 합으로 묶여 탁해지고 死地로 무력하니 공사 소음이 꿈틀거리는 뱀처럼 방안을 파고들고, 귓속을 파고든다. 잠이라는 인간의 가장 깊숙하고 은밀하며 사적인 水의 시공을 간여지동의 丁巳火로 침해 당한다. 이제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그냥 무시하고 잠이 올 꺼 같기도 하다. 다시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노크를 쾅쾅, 내가 집에 없었다면 1시간이라도 두들길 기세로 길고 세게 쾅쾅 거렸다. 문을 열었더니 집주인이 수도관 공사 때문에 나에게 수돗물을 쓰지말라고 통보했다. 언제까지 못 쓰냐고 했더니, 그건 자기도 모른다고 그냥 쓰지 말라고 한다. 귀찮고 피곤해서 그냥 알겠다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집주인은 다시 옆집 문을 쾅쾅 두들겨서 기어코 문을 열게 했고 통보했으며, 층층이 위로 올라가면서 계속 두들겼다.

가까스로 다시 몇 시간 잠들 수 있었고,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은 후 그냥 샤워를 해버렸다. 출근을 해야하고, 목욕탕을 가주기엔 왠지 억울하고, 나를 괴롭혔던 오늘의 일진 丁 상관을 이번엔 내가 써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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