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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l 08. 2019

음양(陰陽)의 상대성

동양철학의 기본은 음양(陰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자로 보면 음(陰)은 '그늘 음', 양(陽)은 '볕 양'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태양을 기준으로 정면으로 비춰진 쪽은 양이 되고, 이면에서 생긴 그림자는 음이 되는 것이다. 도식으로 만들어 보면 日 →→→ 陽|陰 이런 모습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음양이 한 세트로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음양은 절대적/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객체가 아니라 관계/관점에 따른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태양에서 관점을 바꿔보자. 태양열이 아주 강하게 작용해서 햇빛이 비치는 곳이 사막화되었다고 가정하자. 그 지역에서 태양빛을 피하게 해주는 커다란 언덕 뒤에 유일하게 그늘진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생명체의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햇빛이 비치는 곳은 음(陰)이 되고, 그늘이 머무는 곳은 양(陽)이 되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아까 전에는 태양이 비추는 볕이 드는 곳이 양이었고, 태양 볕이 들지 않는 그늘이 음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태양의 위치 변화에 따라 그늘에 볕이 들면서 음이 양이 되고, 볕에 그늘이 깔리면서 양이 음이 되는 것이다.


태극무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태극은 직선의 일자로 반듯하게 갈라져있는 것이 아니라 곡선의 휘어진 형태로 양분되어있다. 곡선은 곧 양이 가득차면 음으로, 음이 쇠하면 양으로 흐른다는 운동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또 서로의 영역에 상대 영역의 흑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음양은 서로가 서로를 내포하고 있으며 교차하면서 순환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관점에 따라 서로가 서로의 지향점이며 목적지라고 봐도 될 것이고(인간적 관점), 무목적적/필연적으로 다다르게 될 결과물로 봐도 될 것이다(자연적 관점). 다만 곡선이 마구잡이로 휘어진 게 아니라 일정한 규칙성, 패턴을 가지고 원을 양분한 모습이니 만큼 혼돈스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변화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음양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것들을 분류해보자.

음 : 그늘,땅,달,물,겨울,연못,여자,내면적,실속,움츠림,죽음,물질,이면

양 : 햇볕,하늘,태양,불,여름,산,남자,활동적,명분,발산,삶,생명체,표면


순서대로 짝을 짓도록 단어를 나열해놓았다. 다르게 얘기하면 여기서 '짝'을 짓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음양을 대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된다. 예를들어 개별적으로 볼 때 음에 속하는 땅을 보면, 땅 중에서 북극처럼 인적이 극히 드문 땅과 뉴욕의 번화가 땅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음으로 후자는 양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보면 죽음과 삶에서도 죽음은 윤회나 사후세계의 출발점이고, 삶은 죽음이라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의 종착점으로 향하는 제한된 틀이라고 생각해보면 죽음을 양으로, 삶을 음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각기 대표하는 성향이 음과 양이라는 것일 뿐, 여자 중에서도 음중의 양으로 강인하고 활발하고 주체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으며 남자 중에서도 양중의 음으로 부드럽고 섬세하며 내면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생물학적 특성상 본질적으로 남자-돌출형 성기-전진하는 정자-그에 맞는 형태의 호르몬, 여자-수렴형 성기-기다리는 난자-그에 맞는 형태의 호르몬을 가지게 되니 일반적으로 남자는 양을 대표하고 여자는 음을 대표하는 것이다. 본능적/무의식적으로 결정적인 면에서 남자는 양의 특성을, 여자는 음의 특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극소수의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그 예외도 음양 작용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리라.


간혹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양은 지배하는 것이니 우월하고, 음은 착취당하는 것이니 하등하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음양에 대한 그릇된 이해다. 아무래도 남존여비의 시대적 배경에서 동양철학이 발달하였기에 그 내용 전달 과정에서 양이 우월하고 음이 열등하다는 식으로 왜곡된 것이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렇지만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낮이 밤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발상은 말도 안 된다. 밤이 있기에 낮이 있고 낮이 있기에 밤이 있는 것이다. 밤의 휴식이 있기에 낮의 활동이 생길 수 있고, 밤의 영감이 있기에 낮의 개발이 생길 수 있으며, 밤의 즐거움이 있기에 낮의 힘겨움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고 지배-착취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위에 양적인 여자, 음적인 남자를 표현한 단어에서도 우열의 늬앙스는 배제되어 있고 단지 각각의 특성을 적었다. 양(陽)이 '활동적이다'라는 특징을 가졌다고 얘기를 할 때, 음(陰)을 '음침하다'고 비하할 게 아니라 '정신적이다','내면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음양의 개념에서 선악(善惡), 미추(美醜), 우열(優劣)은 따질 수 없고, 따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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