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메타 명리의 변화원리② : 사상(四象)·오행(五行)
주자가 말하길 "하늘이 백성을 낼 때 각각 '본성'을 주셨다. 본성은 물건이 아니고, 하나의 도리일 뿐이다. 사랑은 하나의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근본원리)이며, 정의는 하나의 끊어서 절제하고 잘라내는 도리이며, 예절은 하나의 공경하고 절차를 따르는 도리이며, 지혜는 하나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도리이다. 대저 이 4가지는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니, '본성의 본체'이다."라고 하였다. (『대학집주장구대전』)1)
자연(대우주)과 인간(소우주)은 하나로 통하기에 춘하추동 4계절 특성은 인간의 마음으로 그대로 상응합니다. 양심(본성)의 영역에서는 봄처럼 모든 것을 살려내는 기운을 ‘사랑(仁)’으로, 여름처럼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기운을 ‘예절(禮)’로, 가을처럼 알맹이와 쭉정이를 칼같이 걸러내는 기운을 ‘정의(義)’로, 겨울처럼 고요하게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기운을 ‘지혜(智)’로 봅니다. 욕심(감정)의 영역에서는 봄의 설레는 기운을 ‘기쁨(喜)’으로, 여름의 활발한 기운을 ‘즐김(樂)’으로,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분노(怒)’로, 겨울의 쓸쓸한 기운을 ‘슬픔(哀)’으로 보죠.
자연의 순환에서 원형이정의 근본원리와 생장수장의 보편법칙이 차원을 달리하듯 인간의 마음에도 양심과 욕심의 두 차원이 존재합니다. 다만 근본원리를 순종적으로 따르는 자연의 보편법칙과 달리 양심과 욕심으로 갈라지는 인간의 마음에서 욕심은 진리를 위배하여 한없이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양심과 욕심 둘 중 어느 한쪽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자유의지는 인간이 가진 특권이자 위험 요소인 거죠.
음양이 나뉘기 이전 마음의 중심 절대계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밝은 양심의 영역이고, 음양이 분열된 마음의 표면으로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나만을 위하는 어두운 욕심이 강해집니다. 양심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이라면(호선오악好善惡惡), 욕심은 이익을 따르고 손해를 피하는 마음이죠(호리피해好利避害). 양심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에 모두를 이롭게 하는 공공선을 추구하고, 욕심은 나와 남을 철저히 구별하기에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 마음입니다. 양심은 인의예지의 성품을 품으며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하고, 욕심은 이해관계에 따라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시끄럽게 요동치면서 양심의 인도를 가로막으려 합니다. 그래서 고대 동방의 성인 군주이신 순임금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욕심’(人心)은 위태롭고 ‘양심’(道心)은 미미하다. 오직 양심을 정밀하게 밝히고 한결같이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人心唯危 道心唯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서경書經』「대우모 大禹謨」)2)
양심은 그 자체만 보면 선(사랑)으로 가득 차 온 우주의 뿌리가 되어 만유를 전지전능하게 창조·경영하는 지극히 광대한 마음이지만, 욕심에 치우친 에고의 입장에서는 미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욕심은 위태로울 뿐 그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욕심이 양심의 빛을 왜곡·외면하여 선에서 멀어질수록 악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욕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욕심은 이번 생에 부여받은 육체를 어떻게든 살려내고 번영시키라는 저차원의 우주적 신호, 자연의 명령, 카르마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능 역시 황극의 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죠. 다만 인간에게는 땅에서 들려오는 명령인 욕심의 신호 말고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명령인 양심의 신호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힘을 실어줄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정도의 왜곡되고 편협한 욕심은 잘못된 길로 나아가 흉한 운명을 자처하게 됩니다. 최소한 양심의 뜻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욕심을 부려야 하며, 나아가 양심으로 욕심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양심의 뜻에 가까운 고차원의 욕심을 부려 자아의 개성, 운명을 우주적 사명으로 승화하는 게 하늘도 응원해주는 가장 뜻깊고 보람찬 삶일 것입니다.
음양의 이원성으로 갈라져 욕심의 희로애락에 치우치면 나와 남을 구별하여 나의 이익만을 중시하게 됩니다. 그 결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서 악을 저지를 수도 있죠. 매일 일없을 때 명상하여 마음의 중심을 직관·분석하고, 일 있을 때 현존하여 마음의 중심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신 차리고 중심을 잡으면 양심의 인의예지를 직관하여 현상계의 욕심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 결과 적절한 중도를 찾아서 나와 남 모두에게 이로운 조화를 얻을 수 있죠.
마음의 중심, 태극에는 인의예지의 근본원리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명상의 직관과 양심 성찰로 그러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밝힐 수 있다면, 황극의 작용을 도와 현상계에서 역량껏 양심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무극·태극의 본성에 갖춰진 양심은 누구나 차별 없이 동등하게 지니지만, 그것이 황극으로 표현될 때는 영성 지능(자유의지)·업장(카르마)에 따라 표현수준이 달라지고 개성(사주팔자)에 따라 표현방식이 달라집니다. 양심을 표현하는 방식의 다양성은 폭넓게 수용하되 표현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내 인생을 경영하는 개체적 황극(에고)을 하느님(양심=태극)의 뜻에 따라 원만하게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성인·부처’라고 합니다. 아직 닦아야 할 것이 많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뜻을 진지하게 세운 사람을 ‘군자·보살’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모르거나, 알아도 따르겠다는 의지를 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을 ‘소인·중생’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멀어져 심각한 이기주의로 공감 능력에 장애가 있고 우상을 숭배하는 욕심의 화신을 ‘소시오패스’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잘 모르면서 아는 척 권위를 앞세우고 흉내만 내는 사람을 ‘위선자·율법주의자’라고 합니다. 현상계를 경영하는 황극을 외면하고 절대계의 무극(열반)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소승 수행자’라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인·부처’가 되기를 지향하는 ‘군자·보살’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시오패스’를 제압하고, ‘위선자’를 무력화하며, ‘소승 수행자’를 설득하고, ‘소인·중생’을 구제해야 합니다.
<참고자료>
1)윤홍식 지음 『대학, 인간의 길을 열다』 봉황동래, 2017 p.136
2)윤홍식 지음 『중용, 양심경영의 지혜』 봉황동래, 2017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