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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Mar 24. 2022

인생은 타이밍

기차 시간보다 20 정도 남길  있도록 여유를 두고 집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웬걸 내렸어야  환승역에서 정신를 팔고 있다가  정거장 지나쳤고, 다시 돌아와 갈아타야하는 바람에 여유 시간이 10분으로 줄어들었다. 아직 남은 시간이 충분히 안전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업친데 덥친 격으로 하필 오늘은 지하철에서 장애인 단체 시위가 있었다. 환승역 지하철 출발 시간이 5분 가량 지연되었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야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슬슬 조바심이 나면서 자칫 기차표를 취소해야하는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운수 한 번 더럽군. 하필 타이밍이 이렇게 꼬이다니! 아니, 장애인 시위는 대체 왜 이렇게 자주 있담. (장애인 단체를 탓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소통이 안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에 대한 중립적인 탄식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너무나 자명하게 나에게 있었으므로 그러한 생각에 애써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했다. 나의 느슨한 시간 관념과 그것과 시너지를 일으킨 정신 팔림이 문제인 것을 무엇을 탓하랴.


내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주변 상황에 함부로 책임을 전가하지 말자.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도, 감히 통제하지도 못하는 사물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의 일을 하게 내버려두어라. 자기중심적 감정을 달래기 위해 쓸데없이 자기 연민, 상황 비관, 주변 비판을 하지 말자. 나를 남처럼 객관적으로 보고, 남을 나처럼 공감하려고 노력하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수용하면서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마스크를 뛰고 달리느라 거의 질식할 뻔했지만 다행히 딱 1분을 남기고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거친 숨과 무리한 근육으로 급격하게 지치고 불쾌감이 일었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컨디션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으려 했다. 단지 숨을 고르면서 '타이밍 한 번 끝내주는군!'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없어도 될 긴박감이 상대적으로 성취감까지 만들어냈으니 묘한 꼴이다.


만약 기차를 놓치고 기차표를 취소해야했다면 나는 어떤 결의 생각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하늘이 이 시간에는 영 기차를 타지 못하게 막는군,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최대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며 태연히 다른 시간으로 예매하고 심심한 반성을 했을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어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제는 숨이 차분히 가라앉은 지금 이 시점에 기차 안에서 여유롭게 상황을 관조하니 이러나 저러나 삶이 다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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