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일수록 양심적으로 대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누적된 기억, 생각과 감정의 패턴, 어느 정도 굳혀진 인상과 판단이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으로 덕지덕지 작용하여 '순수한 나'의 시각을 오염·왜곡시킨다. 맑게 깨어있는 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너를 대하는 나, 나를 대하는 너, 나와 너와 우리에 대한 묵은 이미지와 패턴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사회화되어 자동적으로 예의를 차리는 때보다 더 자주, 오래, 깊이 깨어있어야 한다. 잠깐의 방심과 빈틈만 보여도 깊게 파여있는 관계의 골이 습관화된 패턴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공부의 가치(경험치)가 높아지고, 제대로 해냈을 때 보람도 더욱 커진다. 가까운 사람들을 대할 때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한다고 다짐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존재의 무게 중심은 나에게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다짐해야 비로소 공정한 균형 감각이 조금은 맞춰질 수 있다.
나의 기준에 상대를 맞춰서 재단하기 보다 상대의 기질, 역량, 상황, 영성 수준을 냉정하게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 과제이다. 너무 가깝게 지내다보면 무의식적으로 나와 너를 동일시해서 생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쉽다.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상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모종의 기준에 상대가 맞춰주기를 막연히 기대하는 게 자칫 상대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고, 나에게는 실망과 분노가 잇따르게 하기 쉽다. 혹 내가 깨어있지 못했거나 놓친 부분이 있어서 상대가 원치 않는 언행을 보였다고 해도, 원만한 관계 경영을 위해서는 다시 마음을 돌이켜 실망과 분노가 아닌 공감과 연민을 해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실망과 분노를 표현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져도 그때라도 정신을 차려서 역지사지하여 오해를 해소하고 사과할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가 그러지 못한다면 나라도 먼저! 어차피 누구나 다 어느 면에서 어느 정도씩은 모두 이상한 게 인간이라는 존재니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라고 잘못이 아예 없을까?) 불씨가 작을 때 진화하는 게 상책이다. 화에 이끌리지 않고 냉정하게 이성을 되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마음과 관계에 갈등을 일으킨 사안에 대해서 '양심 성찰'을 하면 맹목적으로 패턴을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데 큰 효과가 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결론을 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이끌어준다. 혹 비슷한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과거에 한 양심 성찰은 금방 빛을 찾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선업(善業)이 될 것이다.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해도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반성하고 뒤늦게라도 사과한다면 아직 개선과 회복의 여지가 남아있을 것이다. 상대의 마음이 단단히 돌아섰다면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 다시 홧김에 상대를 원망한다면 악연은 보이지 않게 지속될 것이다. 사과조차 받아주지 않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보며 스스로를 더욱 철저히 반성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줄 수 있다면 이제 상황이 더 안 좋아지지는 않으리라. 해볼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본 것이니 서로의 마음에 여한이 남지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