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명상, 나쁜 명상은 없다. 그저 명상을 한다와 안한다로 나뉠 뿐이다."
위의 말은 ‘진정한 나의 본성(=존재의 순수한 밑바탕=내면의 중심)’을 느꼈냐 못 느꼈냐를 가지고 명상을 한다와 안한다는 이분법으로 구분한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見性)’을 했냐 못했냐, ‘참나’를 만났냐 못 만났냐로 명상을 나눠본 것 같다는 말이죠.
혹은 명상의 효과를 이러쿵 저러쿵 논하기 전에 뭐가 되든 일단 명상을 해보라는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한 말 같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좋은 명상과 나쁜 명상을 굳이 구분해보자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 등 명상의 형식을 취하면서 머리로는 끊임없는 잡념에 매몰된다면, 정확히는 명상이라고도 말할 수 없겠지만, 나쁜 명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반대로 특정한 명상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해도, 육체가 운동하고 감각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언제 어디서나 고요하고 또랑또랑한 ‘순수 의식’을 각성해서 나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관찰할 수 있다면 좋은 명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명상의 깊이 측면에서 말하면 불교에서는 ‘1선정’부터 ‘4선정’까지, 그리고 ‘멸진정’으로 명상의 깊이를 구분하기도 합니다(1선정<2선정<3선정<4선정<멸진정). 더 깊이 들어갈수록 무조건 더 좋은 명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명상의 깊이에 있어서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죠.
가장 좋은 명상은 때와 장소에 맞게 필요한 만큼 적절한 깊이에서 ‘순수한 의식’을 만나고,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일이 없을 때는 명상에 깊게까지도 들어가며 충전하고 영감을 얻어오고, 일이 있을 때도 얕게나마 깨어있는 상태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는 것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