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인 차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잠'이라면, '명상'은 의식적인 차원에서 취하는 휴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잠과 명상 둘 다 <생각•감정•오감을 내려놓는다>는 공통점이 있죠. 잠은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한데, 명상은 별다른 조건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으니 올바른 명상법을 안다면 주도적으로 유연하고 효율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교에서는 명상의 상태를 '텅 빈 알아차림'(공적영지空寂靈知)이라고 묘사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런 조건 없이 '고요하고 뚜렷한 나라는 존재감', '순수한 존재 자체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현대적으로 쉽게 말하면 '적극적인 멍때리기'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명상은 '나에 대한 몰입'으로 <깨어있음+지혜>(불교에서 말하는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도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몰입이든 나에 대한 몰입이든 행복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진다는 공통점이 있는듯 합니다. 이러한 포인트에서 명상을 통해 진정한 '본질적인 휴식'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해요.
‘정혜쌍수'에 대해 부연하면, 명상을 통해 마음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감정•오감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깨어있을 수 있게 됩니다. 즉, 평상심을 가지고 내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죠. 그러한 차분한 거리두기를 통해서 기존의 선입견•무의식•본능의 피상적인 작용에 판단을 함부로 내맡기지 않고, 나의 개성과 상황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지혜'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삶은 언제나 나로부터 대상에 향할 수밖에 없고, 대상에게서 나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으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명상'은 인류 누구에게나 공통 분모에 해당하는 필수 과목이지 않을까?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요.
올바른 명상법의 핵심은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런 조건 없이 '고요하고 뚜렷한 나라는 존재감', '순수한 존재 자체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 주도적으로 이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명상 상태에 제대로 이르기 위해서는 ‘나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철학적인 ‘개념’과 명상 가이드를 통한 적절한 ‘체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올바른 개념과 체험이 쌓이면서 감이 잡히면 점점 더 쉽게, (원한다면) 깊고 오랜 시간 동안,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명상 상태에 빠져들 수 있겠죠.
명상이 익숙하지 않은 처음에는 생각•감정•오감이 진정되는 고요한 환경을 조성해서 ‘정적인 명상’을 진행해야겠지만, 느낌을 알게 되면 정신 없는 환경에서도 눈만 감으면 적절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명상이 이루어질 수 있고, 더 익숙해지면 육체가 운동하고 오감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마음만 먹으면 <깨어있음+지혜>의 ‘동적인 명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깨어있음+지혜>가 자동으로 이루어져서 늘 떠나지 않는 상태를 추구해야할 텐데, 불교에서는 그러한 상태를 ‘확철대오(廓撤大悟)’라고 말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