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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박변 Sep 14. 2022

뉴욕박변: 깻잎 투쟁기

불법인 사람은 없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깻잎 한 장 한 장에 느끼는 감정은 많이 다르다.


농업 발달의 기술과 함께 농작물의 생산력이 늘어났다는 뉴스 기사가 반갑지만은 않다.


그 유명한 깻잎 논쟁 (배우자가 다른 이성의 깻잎장아찌를 떼어 줘도 되느냐 안 되느냐)가 한창일 때도, 과연 그 깻잎이 어떻게 우리상에 올라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루만 오천장, 깻잎 15 상자, 하루 열 시간, 일일이 한 장 한 장 손으로 따야 하는 노동 집약적인 깻잎은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농업 이주민들의 눈물로 우리의 밥상을 차리는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 만 오천 장보다 놀라운 건, 왜 그동안 대다수의 우리에게는 단 한 번도 이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깻잎 말고도, 신선도와 유기농, 산지 직송을 좋아하는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로컬푸드, 동물복지, 무항생제 같은 표시에만 안심하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를 주저한다." (17 페이지)


2020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의 채소 농장에서 4년 넘게 일했던 31살의 속헹씨는 출국을 3주 앞두고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 전날 포천은 영하 18도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고, 속헹씨가 살던 집은 비닐하우스 안에 얇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설 건축물이었는데, 며칠간 전기마저 끊겨 난방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국가소가 밝힌 사인은 간경화. 전문가들은 속헹씨가 지낸 환경이 건강을 악화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한국에 입국한 20대 캄보디아 여성인 썸낭씨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농장에서 일했는데, 한국인 아주머니가 썸낭씨가 사는 곳을 보고는 '돼지우리 같네'라는 말을 뱉었다. 썸낭씨는 자신이 사는 곳이 정말 더럽고 냄새가 나는 곳이어서 그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돼지우리 같은 곳에 썸낭씨는 실수령액 125만 원 중 약 20%인 31만 원의 기숙사비가 공제된 임금을 받고 일했다.


사진: 한국일보 서재훈 기자


기사 원문: "돈 내고 이런 숙소에..." 이주노동자 주거권 외면이 부른 비극 (hankookilbo.com)


2015년 6월, 22살의 캄보디아 여성은 경기도 이천의 한 채소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2020년 4월에 비자가 만료될 예정이어서 출국을 앞두고, 3년 7개월 동안 950만의 임금을 받았다. 하루 10시간, 한 달에 두 번 쉬고, 한 달에 22만 원을 받은 셈이다. 밀린 월급을 요구하며 그동안 자신의 노동 시간을 빼곡히 적은 수첩을 보여주자, 농장주는 그 수첩을 불태워 버렸다. 그래도 월급을 요구하자, 기숙사 문을 부수었다. 일부는, 그러게 왜 그렇게 될 때까지 버텼느냐 하지만, 사실 이 질문은 "어떻게 3년 넘게 월급을 안 주고도 붙잡아 놓을 수 있었는지?" 농장주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 아닌가? 형법상 사기죄로 고소를 하더라도, 서류상 농장주 앞으로는 아무런 재산을 등록해 놓지 않으면, 받을 방법도 없고 비자가 만료되면, 출국할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안 줘도 그만이라는 농장주도 있다. 서류 미비자인 경우는 월급을 달라고 빌었지만, '불법 체류'를 신고하겠다는 협박만 돌아왔다. 일부의 문제라고 하기엔 임금 체불 신고액만 1천억 원이 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2020년 기준, 임금 체불을 당한 이주 노동자는 31,998명).


이 사건을 취재했던 MBC 기자는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 '고용허가제'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하면, 직장을 옮길 수 있는 권한이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실 근로자 제도'역시 사람 잡는다. 이주노동자가 입국 후 일할 수 있는 최대 취업 기간은 4년 10개월이다. 이 동안 사업장 변경이 없으면 성실 근로자로 인정받게 된다. 이런 경우, 재고용에 서로 동의해 사업주가 요청을 하면, 이주 노동자는 본국에 돌아가 3개월 이상 머물렀다가 다시 한국에 입국해 최대 4년 10개월 더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9년 8개월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또, 자격 요건인 한국어 능력 시험을 볼 필요도 없고 사업주와 계약이 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정해진 시간 안에 사업주가 고용하지 않으면 많은 돈이 드는 한국어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2016년 한국에 들어온 20대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니어리씨는 경기도 이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국 남성 사업주는 그녀에게 성희롱을 일삼았고, 심지어 그는 니어리씨를 강제로 보건소에 데려가 성병과 에이즈 검사를 받게 했다. 고용 센터에 성희롱 신고를 해도 조사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담당 공무원은 성희롱 말고 임금 체불로 진정을 해서 사업장을 변경하면 사업장 변경에 고용주가 협조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결국,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니어리씨는 가해자의 사업장에서 나와야 했다.


'지구인의 정류장' (이주 노동자들을 잇고 돕는 비영리 단체)의 김이찬 감독은 성폭력 피해에 관해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물론, 사업주의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 또 강요된 임신 중단 수술을 받은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그 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것.


어떤 농장주들은, 정부의 노동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 월급을 주기가 부담스럽다고 하기도 했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니 월급 적게 벌어 가야 한다며, 이들 때문에 원화가 해외로 빠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준 근로 계약서를 실정에 맞춰 안내하고, 더불어 고용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임금이 오르면 퇴직금도 오르고, 고용주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 매달 지구인의 정류장에 후원하는 것부터가 시작이 될 수 있겠다.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파견 나갔던 우리나라 사람들, 미국에서 시즌마다 노동집약적인 농장 노동을 위해 땀 흘리는 남미 이주노동자들, 미국에서도 자주 보아왔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성폭력과 임금 체벌의 문제들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직접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연구하고, 현재는 보스턴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계신 우춘희 선생님과 함께 독서모임을 했었다. 시차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거의 두 시간 동안 멤버들의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변해 주신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숙제처럼 계속 마음에 남는 책이다.


참고 기사:

[커버스토리]이주노동자 잇는 ‘지구인의 정류장’엔 휴일이 없다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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