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dipity: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곳에 나의 길이 숨겨져 있다.
나는 20대 중반이 질풍 노도의 시기였다. 항상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10년의 유학생활 끝에, 끝자가 '사'자로 끝나는 학원강사를 하게 되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일주일마다 1,500만원이 나오던 병원비를 보고는 나는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봤던 GRE가 상위 2%여서 그 점수를 가지고 서울에 한 유명한 어학원을 찾아갔고, 마침 유학생들이 방학을 하는 시기라서 나는 첫 달부터 100명의 SAT 수강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만 하면, 아빠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교통사고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는 1년간 유예신청을 해 놓은 내가 다니려던 대학원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당시에는 유학을 했거나 교포 출신의 영어강사가 많지 않았고, 좋은 동료와 함께 팀을 이루어 10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에 수강생이 다 못 들어가 학생들이 복도에 책상을 주르륵 놓고 듣는, 꽤 인기 있는 강의를 했다.
강사로 가장 많이 벌었을 때는, 지금 변호사 월급보다 훨씬 많았다. 100만원 생활비를 남기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다 부쳐 주었다. 아빠 간병을 하는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돈 걱정은 안 했으면 했다. 나는 쉴 새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고, 더 많은 돈을 벌수록 내가 더 가치가 있다는 착각속에 몇 년은 지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은 불만으로 가득했고, '결국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에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그 당시 스티븐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의 'stay hungry'강연이 화제였고, 나는 그가 한 말 중에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을까? 싶을 때가 있지만, 결국은 그 점, 하나 하나가 모여서 나중에 선이 되더라는 그 말을 썪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꼭 붙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안의 공허함을 어쩔 수 없었다.
학원가에서는 한 달을 쉬면, 직장을 1년 쉰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냥은 계속할 수 가 없었다. 원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한 달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짐도 정리할 겸 미국에 다녀 오겠다고 했다. 주말마다 아빠를 밤에 돌보는 것과, 몸의 왼쪽이 다 마비된 아빠를 탕에 넣어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시키는 것은 나의 몫이었는데, 딱 4번만 아빠에게 미안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시애틀을 들러 뉴욕에 갔다. 대학교 때 와세다 대학에서 교환 학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나 친해진 언니는 뉴욕에 파슨스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언니가 수업을 듣는 동안 맨하튼의 여기 저기를 걸어 다니거나, 박물관과 갤러리를 구경하거나, 대학들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며칠 후, 한국에 한 의사협회 컨퍼런스를 동시통역 하기 위해 돌아가기로 했었는데, 주최측과의 마찰로 일정이 취소되고, 대신 나는 그 날 콜롬비아 로스쿨을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나의 그 다음 '점'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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