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에 더 가혹한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20대 초반에 로버트 키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passive income (내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생기는 수입)에 대해서 알고 나서는 항상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내가 일하는 시간과 맞바꾸지 않고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강사 생활을 하면서,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온라인 강의도 했었고, 26살에 지방에 아주 작은 아파트를 샀다. 그때만 해도 아빠의 병원 생활이 20년이 될 줄은 몰랐다. 조금 더 지나면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회복해서, 아빠를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시키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엄마의 뜻에 따라 모델 하우스를 보러 갔다가, 6개월 동안 무이자 할부를 해 준다는 말에, 조금 무리일 수 있지만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저지른 '충동(?) 구매'였다. 당연히, 부동산에 대해 비읍도 몰랐고, 엄마도 비슷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한 달에 단 얼마라도 내가 일하지 않고 돈이 나올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내가 뉴욕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시작한 첫 직장은 아시아계 동포들이 많이 사는 뉴욕에 플러싱이라는 동네였다. 한국 동포들 중국인 동포들이 많이 살고, 길거리 식당 간판도 한글로 되어 있는 정겨운 곳, 자주 고장 나고 연착하기로 악명 높은 7번 지하철이 끝나는 곳, 한국 식당이 더 많은 곳, 다닥다닥 집이 붙어있는 곳,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 그들이 산다. 한 방에서 여러 명이 모여 살며 렌트를 줄이고, 출근 시간 3시간 전에 일어나, 2시간 걸려서 맨해튼까지 출근을 하고, 식당, 네일숍, 세탁소, 편의점에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일을 하고, 다시 그 몸을 이끌고 2시간을 사람들이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그 일을 반복한다. 참, 녹녹지 않은 이민 생활이다.
그런데, 그 동네에 변화가 생겼다. 투자가들의 자본이 순식간에 들어오며, 허름했던 집들이 헐리고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원 베드룸에 $1,200불이었던 렌트는 $2,000로 뛰었다. 그렇지만, 맨해튼으로 출근하던 그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더 이상 그 동네에 살 수가 없게 되었고, 이제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 걸어서 가야 하는 곳으로, 가로등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곳에는 새로 지은 깨끗한 아파트의 높은 렌트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영어로 Gentrification라고 하는 고급 주택화-나는 그게 영 맘이 편치 않다.
부동산은 누구에게는 숫자로만 보이는 투자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살아온 터전을 다시 옮겨 퍽퍽한 생활을 더 고단하게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빨리 축척한 부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많이 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내가 재정적 자유를 달성하는 데 있어,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조금은 느리더라도 나에게는 그게 더 맞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빠른 길이 항상 최선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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