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비싼 우리 엄마 남은 시간
아침에는 항상 마음이 바쁘다. 새벽 5시 반에 하루를 시작해도, 여전히 어제 다 미쳐 못 끝낸 일들과 밤새 온 이메일을 확인도 해야 하고, 2021년 200번 Gym에 가겠다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 적어도 일주일에 4번은 운동도 가야 한다. 그런데 아침에 동생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엄마가 많이 아팠다고 전화 한 번 "해 주라"라고. 언제부터 나에게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이 "해 주는 것"이 되어버린 걸까? 예전에는 출퇴근길에 거의 매일 통화를 했었는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현저히 그 횟수가 줄었다. 더구나 아침시간에는 주말 아니고서야 잠깐의 통화도 사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끊게 된다. 그러면, 더 통화하고 싶어도 "그래, 얼른 일해"하고 엄마는 통화를 서둘러 마무리 지어준다.
많이 아파 응급실에 가도, 보호자가 없는 우리 엄마, 7번을 토하고도 그 화장실 청소를 혼자 했을 우리 엄마, 너무 아픈데 죽 끓여줄 사람 하나 없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몇 번 벨이 울리고 엄마가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마치 짝사랑하던 그놈이 오랜만에 한 전화처럼...
"많이 아팠다면서?"로 시작한 통화를 하다가, 엄마에게 옆 집 놀러 오라고 하듯 놀러 오라고 한다. 그럼 엄마는 "아빠는 어떻게 하고?"라고 항상 하는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하지만 사실 엄마는 병간호만 20년째다. 아빠의 뺑소니 교통사고는 엄마를 40대부터 병원으로 출근하게 했다. 코로나로 아빠가 계시는 요양병원은 면회가 안 된 지 수개월째다. 사실 아빠는 입으로 더 이상 음식 섭취를 하지 못하신지 몇 년째다. 그래도 엄마는 아픈 허리를 끌고서 시장에 가서 제철 채소를 비롯해 20가지 넘는 재료로 아빠 죽을 직접 쑤어 매일 나른다. 간병인 아저씨께 지하 주차장에서 전달을 하면, 주사기를 통해 아빠 위로 바로 죽이 뱃줄을 통해 들어간다. 병원에서 나오는 '영양식'은 아빠와 잘 안 맞아 자꾸 설사를 하게 한다고 기어이 직접 매일 죽을 쑨다. 자식이 어렸을 땐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헌신적이더니만. 사람은 역시 잘 안 변한다.
올해 엄마는 70이 된다.
"엄마, 엄마가 앞으로 건강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나이가 얼마나 될까? 한 10년? 앞으로 남은 시간 10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10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봐. 엄마, 뭘 제일 하고 싶어?"
"너네 보고 같이 시간 보내는 거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1년에 한 번씩 만난다고 해도 딱 10번이거든."
짧은 침묵 후, 엄마가 "... 그러네" 하고 나지막이 말한다.
"엄마, 이제 엄마 시간은 이 세상에서 돈 보다 훨씬 비싼 거거든. 그러니까,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동안 못해봤던 거 중에 하고 싶은 걸로 채워야 하는 거야. 엄마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 수 있는 10년. 10년 후에는 기력이 쇠해지니까 마음처럼 돌아다니기도 힘들잖아. 그러니까 급하게 해야 하는 안 중요한 일을 과감히 버리고, 엄마에게 정말 중요하고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으로 앞으로의 10년은 채워야 되지 않겠어?"
"한 번도 안 적어봤어. 뭘 해야 내가 행복한지... 나야 운동하고, 너네 보고 하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
"그래, 처음에는 잘 생각이 안 나. 그러니까 치열하게 생각해서 30개 적어서 딸들한테 이번 주 일요일까지 버켓 리스트를 보내도록 해."
"알겠어. 써 볼게."
사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엄마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바하마, 그리스, 터키, 영국을 다녀왔다. 그리고 갈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평생에 한 번도 안 해 본 미션을 하나씩 준다. 상어와 수영하기, 워터파크 미끄럼틀 타기, ATV 타기 등등. 역시 모범생답게 엄마는 하나씩 잘해 내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다음 여행을 위해 만날 때까지 1년을 그 사진들을 보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다음엔 멕시코 캔쿤을 갈까 아니면 엄마 무릎 상하기 전에 같이 페루에 마추픽추를 올라볼까, 아프리카를 함께 갈까 상상하며 즐겁게 헤어졌는데, 코로나로 아무 데도 못 갔다. 작년에 나도 한국 출장이 잡혀 있었는데 물론 취소됐다.
전화를 끊고 나는 울컥한 가슴이 한참 동안 가라앉지를 않았다.
통화 중에 엄마가 '시원 영어'를 들어보겠다고 몇 년 전에 태블릿을 샀는데 한참 안 쓰니까 어떻게 끄는지도 기억 안 나더라고 하는데 목이 메었다. 딸 셋이 다 해외에서 영어로 밥벌이하고 있는데, 다들 지 살기 바쁘니 엄마는 혼자서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었나 보다. 하나밖에 없는 두 살짜리 손주가 영국에 살다 보니,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싶어도 영어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문득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위한 쉬운 영어를 매일 조금씩 가르쳐 줘야지. 엄마게 손자랑 웃으면서 농담할 수 있게 해 줘야지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싼 건 우리 엄마와의 남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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