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 너

푸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니

by 뉴욕박변

부자가 되려면 적을 만들면 안 된다는데, 난 멀어도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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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8시가 넘어온 상대방 변호사의 협박 이메일. 내일 아침 9시 반 전까지 답장이 없으면 판사에게 편지를 쓸 테니 알아서 하란다. 어이쿠, 무서워라. 사실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런 배려 없음에 화가 난다. 아무리 소송은 양쪽 변호사가 싸우는 거라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네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내가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난 줄 알아? 맘대로 하시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런 쓸데없는 작은 이슈로 법원에 가면 내 고객은 쓸데없는 싸움에 대한 비용을 내야 한다. 그러니, 내 사사로운 감정은 쓰레기통에 일단 던져 놓는다.


또 한 편으로는 그 협박 전문 변호사의 고객인 원고도 참 안 됐다. 이 사건은 애초에 합의를 하는 것이 원고도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았을 텐데, 변호사를 중간에 바꿨는데 이 변호사는 뻥만 튀기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제대로 일을 안 해, 계속 법원에서 정한 마감일을 계속해서 어기고, 결국 판사에게 혼쭐이 나고 그 로펌에 다른 변호사로 교체를 해야만 했다. 결국 원고인 그 청년은 변호사 비용 빼고 나면 소송을 안 하느니만 못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것이고, 지난 3년간 기나 긴 맘고생을 했을 것이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우리 측의 잘못은 없음이 점점 더 잘 드러났고, 판사도 이에 대해 원고 측 변호사에게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었다. 사실 그 청년의 고용주의 잘못이 한 80%, 그 청년의 잘못이 20%쯤인데, 고용주에 대해서는 소송하지 않았다. 다치고 나서도, 같은 고용주 밑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큰 회사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스테레오 타입은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사실이 아니다. 큰 회사는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조사에 착수해, 만일 회사의 잘못이라면 재빨리 배상하려 하고, 때로는 잘못이 없더라도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배상을 끝내고 합의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뉴욕에 원고 측 변호사들 중에는 '회사는 돈이 많으니까, 불쌍한 사람 도와주는 셈 치고'라는 마인드가 특히 뉴욕 배심원들에게 잘 먹히는 방법이니까, 무조건 재판에 갈 거라고 협박을 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보상액의 1/3을 갖게 되기 때문에, 사실 크게 다치지 않은 경우에도 여기저기 수술을 받아야 보상액을 받을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가지도 않은 물리치료에 날 잡아 서명만 해서 제출하기도 한다. 심각하게 다쳐서 움직일 수 없다면서, 마라톤에 몇 차례 참가한 원고도 심심찮게 있다. 데포지션에 출석하면서 지팡이 짚고 등장했다가, 중간에 잊고, 무거운 의자 번쩍 올리고, 화장실 갈 때 멀쩡이 걸어가기도 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여러 검사 결과들과 의사의 의견, 예전에 비슷한 곳을 다친 적이 있었는지도 조사한다.


소송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그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 사람이 다치기 전에 월급은 얼마였는지, 앞으로 얼마간 더 일을 할 수 있었을지, 다치고 나서 다른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얼마인지 등등. 처음에는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더 나은 방법도 딱히 없지 않은가?




이번 주에만 수, 목, 금 계속 잡혀있는 데포지션으로 이미 스트레스 레벨은 한계에 달해 있는데, 이 중 두 개는 전문가 증인에 대한 거라서, 이슈가 되고 있는 기계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난 3년간 있었던 17명 증인의 데포지션 기록 및 현장 검증 사진들 등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주말 내내 일했는데도 턱도 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그래도 재판을 준비할 때보다는 여유가 있다.


사실 이것 말고도 요즘에는 맘에 화가 쌓이는 일이 많았다.


외할머니 재산을 할머니 모르게 다 빼앗은 그 사람들에 대해,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나,

내 잘못은 아니지만, 전 주인이 잘못한 플러밍 문제로 아래층 화장실에 물이 샜는데, 그 김에 전체 천장을 갈아놓고 이미 비용 다 냈으니, 다음 달 커먼 피에 더해질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나,

본인에게 온 보이스 메일까지 다 처리하라고 '전달' 버튼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드는 상사나,

내 글에서 소개한 내가 정말 아끼는 작가의 말을 credit도 주지 않고, 자기 말처럼 맘대로 가져가 글을 시작하고, 중요한 부분 뚝 잘라서, 돈을 벌려는 자기의 다음 프로젝트로 도용하는 작가라는 작자나,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사람들을 이용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진심' 어쩌고 운운하는 그 사람이나,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안 지키고 뺀질거리는 나 자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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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속에 화가 많았다.


처음으로 틱낫한 스님의 Anger <화>라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사면서 제발 이 고질병을 고쳐 주었으면 바랬던 때도 있었고,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화, 내 일 뿐 아니라 남이 당한 억울함에 대한 화, 내가 보기에 공평하지 않거나 옳지 않은 일에 대한 화, 소외된 계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화... 때로는 그 화가 나를 더 열심히 살게 하기도 했다. 바꿔 놓겠어, 증명해 보이겠어 따위의 젊은 치기로...


화가 쌓이면 주위의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그 사람들에게 딱히 화를 내지 않아도 나의 기분은 전달이 된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요가와 명상, 글쓰기, 독서도 해 본다. 좀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 보면, 변한 게 없다.


매일매일 쌈닭이 되어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런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행이 안 된다. 고장 난 청소기 같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서>에 나오는 말이나, 타라 브락 박사의 <끌어안음>에 나왔던 구절들은 다 남 얘기로 던져 버린다.


그러면 다시 원점이다.



딱 두 달만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조용히 백수로 살아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을 할까를 행복하게 고민하며... 그런 재정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오늘도 달려야 하겠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교훈을 잘 지키며 살고 싶었는데. 워라벨은 뭥미?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된장, 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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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 잘 버티자. One day at a time.


#뉴욕박변 #주저리주저리 #노세노세젊어서노세 #onedayatatime #주문을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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