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기 시작했다. 내 서가의 책은 대충 5천 권 정도로 파악되는데 우선 올 겨울에 2천 권 정도를 빼냈다. 더 줄여야 한다. 얼마나 버릴 수 있을지는 아직 짐작하지 못하겠다.
이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실로 몇 년이 걸렸다. 일단 눈이 문제다. 이제 내가 책을 읽는다는 건 침침해지는 눈과 씨름하는 일이다. 집중력과 기억력도 문제다. 생각은 자꾸만 도망가고 어제 읽은 것도 오늘이면 잊곤 한다. 나는 이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없다. 그걸 인정하는데 정말 몇 년이 걸렸다. 어쩌면 아직도 난 그것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책에는 흔적들이 남아있다. 밑줄을 그어두거나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꽂아놓았거나 귀퉁이를 접어둔 곳이 많다. 한때의 생각이 머물렀던 지점일 터인데도 난생처음 보는 문장처럼 낯설고 새롭다. 그토록 밑줄 치며 읽었던 이 문장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내 몸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책을 버리는 내내 쓸쓸하다. 많은 책을 샀고 많은 책을 읽었다.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읽어댔을까. 외로워서였을 것이다. 책은 세상과 불화했던 내 인생에서 그래도 세상과 이어진 끈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잡았던 끈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버린다. 내가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는 것과 감당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제거해 나가는 것, 매일이 결정이다. 하루에 하나씩 버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