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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늙기 연습

늙기, 연습

by UrsusHomo

그러나 나는 내 몸 밖의 청춘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별, 달빛, 말라죽은 나비, 어둠 속의 꽃, 부엉이의 불길한 예언, 소쩍새의 토혈, 웃는 것의 막막함, 사랑의 춤사위...그런데, 지금, 왜 이리 적막한가? - 루쉰, 희망(1925)


IMG_9481.jpeg 큰나무 이레카야자. 일년에 한두 개의 잎이 난다. 새 잎이 올라오면 늙은 잎을 잘라낸다. 여전히 잎은 푸르고 씩씩하지만 묵었으니 자른다. 나무를 키우는 이치가 그렇다.


정작 나는 모르는 것을 '몸'은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는데 내 몸은 저 앞에 가 있다. 내 몸을 따라가기가 바쁘다. 늙고 있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들이 늘어난다. 아슬아슬해지는 수치의 종류가 많아진다. 몸의 변화 중 가장 곤혹스러운 건 역시 눈이다. 아침에는 뻑뻑하고 밤이 되면 침침하다. 돋보기의 노예로 살아간다. 치명적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로 태어났다. 육십 년대에 태어나 이십 대는 한국의 칠팔십 년대에 고스란히 잡혀먹었다. 그 시대의 자장은 평생 동안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지배했다. 그리고 언제나, 늘, 항상, 일을 했다. 뭔 '몸' 따위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그 시절의 우리는 '몸, 밖'에서 격렬했다.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그 몸이 이제 신호를 보낸다. 그 '몸'이 보내는 신호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가. 대체로는 무지하고 끔찍한 결과가 닥쳐야 비로소 당황한다. 아마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변해가는 '몸'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며 익숙해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늙기, 연습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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