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나의 글에 영원히 살아줄까
책을 넘기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앞서 넘긴 수많은 페이지를 지나며 방심한 사이 상처가 생겨버렸다. 얇게 베인 상처엔 어떠한 자극이 없어 보이지만 피가 조용히 차오른다. 베인 상처를 입에 문다. 피를 멈추기 위한 그 행위는 아픔을 더 줄 뿐 상처는 당장 아물지 않는다. 나를 베개 한 그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여러 장을 함께 넘길 때는 쉽게 베이지 않으며, 크게 보면 무엇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건은 낱장으로 나뉘어 하나씩 섬세해질 때 문제 또한 섬세하게 발생하기 시작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하나의 제목으로 보이길 원한다. 목차를 지나 프롤로그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스토리가 드러나기 그 직전. 큰 키워드와 간략한 안내를 돕는 프롤로그 속 이야기까지만 나를 알고 있길 바랐다. 조금 더 세세하게 들어가면 의문이 들고 물음표가 늘며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된 건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사람들은 정보를 수집할수록 자신의 궁금증이 상대에 대한 배려를 넘어선다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이 소설의 절정에 이르러 몰입을 하게 되는 순간처럼 좀 더 세세하게 원인을 파헤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럼 몇몇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왜 답을 하지 않는 거야? 너에 대한 이야기를 왜 안 해? 그들의 서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타인이 내 감정을 통제할 권리를 주고 싶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정보가 쌓일수록 그 정보에 대한 권리를 가진 듯 참견을 하게 된다. 난 너에 대해 잘 아니까 그것에 대해 해설을 하며 감상평을 늘어놓아 볼게.
특히나 내가 일부분의 모습만 비치길 원하는 이유는 내가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감정이 드러나면 나의 슬픔을 상대가 가져가는 만큼 나의 존재 또한 그 사람에게 의지를 하게 될 터였다. 사실은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더 많은 부분을 감추고 더 이상 페이지를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잘 모르거나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말한다. 나의 책엔 고난과 역경이 없네요? 잔잔한 해피엔딩만 있군요. 내 의도로 많은 페이지를 찢어 냈으나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은 내 평화에 펜을 들어 고난을 새겨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상처는, 책에 베인 상처처럼 미미해 보이고 그만큼 하찮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간혹 아무 의심 없이 나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 대한 추궁 하나 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 감정이 어쩔 수 없이 펼쳐지며 그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작품 해설까지 들먹이게 된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주길 바라게 되고 나를 공유하고 싶어 진다. 결국 어떤 이에게 나는 너무나 쉽게 읽히며 나를 소장하라고 강요하게 된다.
사실 어디까지 나의 이야기를 연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 몰랐으면 하다가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나는 간혹 혼란스러워진다. 하나 확실한 것은 나를 처음 상태 그대로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것이다. 나를 훼손하거나 고치지 않고 내 페이지를 눈물과 피로 젖어 들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들에게는 내 삶에 더 나은 이야기를 추가시키고, 신간이 출간되었으니 어서 나를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