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희랍어 시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잔잔하면서도 오래도록 아리는 게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이 가서,
모국어가 그냥 아름다워서,
이번엔 느리게 읽기로 했다.
좋다.
노벨 문학상이라는 커다란 파도가
우리 집에도 몰려왔다.
한 권은 선물로,
그걸 시작으로,
나도 서서히 한 강 작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만 해도 덤덤했는데,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작가 자신을 관통하는 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한 고통과 통증에
나도 모르게 점점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통과 어둠이 아름다운 문체에
섞였다 떨어졌다를 반복했고,
실낱같은 빛을 더듬게 했고,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남겨진 긴 여운은
다른 작품으로의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다음 순서로
[희랍어 시간]과 [흰]을 읽었다.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운 듯한 [흰]은
오히려 위 작품들보다
나를 더 가라앉게 한 것 같다.
마음이 힘들고 무겁다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하지만,
(어쩜 그동안 전해진 작가의 통증들이
켜켜이 쌓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가 마음 아려하는 무언가를
혹은 모든 것들을
마치 나눠 가지기라도 한 듯
무거웠다.
그 후 며칠을 연달아 꿈을 꾸었다.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뒤숭숭한 꿈들을.
그리고
어젯밤 그 꿈들의 마지막일 거 같은 꿈을 꾸었다.
아주 선명한 꿈이었다.
아마도 도쿄의 외곽쯤인 거 같다.
어느 멋지고 아름다운 숲을
꽤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갔다.
숲은 프랑스의 시골 정원을 연상하게 하는
아주 근사한 모습이었다.
(이건 며칠 전에 본 영화
[프렌치 수프]의 장면과 겹친다. 웃음)
그런데 비싼 입장료에 비해
숲의 규모가 너무 작아 의아해하며
숲의 반대 반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앞으로 갑자기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두 개로 큼직하게 나눠진
커다란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볕이 잘 들고 단정하게 정리된 묘지는
꿈에서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두 개의 커다란 공동묘지 앞 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졌던 것도 같고
그 게 하늘이었던 것도 같다.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
나쁜 꿈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떤 것들에서 벗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가벼워졌다.
(다행히도)
여리고 아프고
아름답고 강렬한,
작가의 시적인 문체는
여전히 흥미로워
마지막으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샀다.
이건 이북으로 구매했는데
여러 면에서 그게 좋았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