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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Aug 19. 2021

우울증 partⅠ

Feat.  살기 위해 먹는 것은 고역

누워서 병원 천장만을 바라보고 지낸 지도

벌써 한 달 남짓.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내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한 채로 지나가는 시간들.


내 인생에 이렇게 힘들고, 지겹고, 슬프고,

또 절망감에 싸여 있던 적이 있었던가…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소변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아야 할 내가, 그들의 짐이 된다는 것.


이런 절망적인 삶의 무게는 나를 짓누르고,

또 지치게 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아빠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나의 삶의 이유. 목표. 가치.


모두가 희미해져 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버지가 잠드시거나,

식사하러 잠깐 자리를 비우시면

누워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감정이 복받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끅끅거리면서 울었다.


이러한 고통과 절망은

무엇보다도 나의 입맛을 빼앗아 갔다.


군대의 그 맛없는 전투식량도 잘 먹었고

(심지어 가장 맛없다는 파래무침과 흰 밥도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위생과는 담쌓은

동남아나 중국의 노천 식당들에서도

잘 먹고 다니던 나였다.

심지어 벌레가 나오기도 했지만,

건져내고 먹곤 했다.


그러던 내가 식욕을 완전히 잃었고,

밥 먹을 때마다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은 고역이었다.

아니,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먹기 싫었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에게 밟힌 벌레가 된 것 같은 느낌.

몸은 만신창이인 데다가,

삶의 의지도 없는 비참함.


‘라디오 헤드’의 ‘Creep’

병원생활중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

벌레 같은 내 처지에 딱 맞는 노래.


군 복무할 때 듣던 노래인데,

들을수록 눈물이 난다.  


But I'm a creep, I'm a weirdo,

하지만 난 소름 끼치는 사람. 난 이상하지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젠장,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I don't belong here.

난 여기와 맞지 않아


아내와 아기가 있는 ‘일반인들’ 사이에

내가 끼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내 영혼은 점점 침식되어 갔고,

‘자살’을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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