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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말산 토끼 Sep 07. 2021

우울증 partⅡ

Feat. 한줄기 빛

나는 죽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살았다.


병원 창문은,

자살위험이 있어서인지

아주 조금만 열리는 구조인 데다가,

마비된 내 다리로는

그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살긴 살았고, 통증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존감은 점점 낮아지고,

자격지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누워서 멍하니

병원 건너편 아파트의 지붕과 하늘을 바라본다.

밑을 내려다볼 수 없으니

그저 구름만 바라볼 뿐이다.


몇 시간을 바라보아도 변함이 없는 하늘과,

병원 커튼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환자와 간병인,

간호사와 의사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코로나로 면회도 금지되어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그날이 그날인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먹기 싫은 밥을 먹듯이, 가기 싫은 곳을 가듯이,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보낸다.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죽지 않으니까 살고 있는 나에게

가장 큰 위로는 갓 태어난 나의 아기였다.


아기 때문에 괴로웠지만,
아기 때문에 행복했다.


아내가 보내주는 아기의 동영상과,

10분 남짓의 아내와의 영상통화는

죽어가는 내 영혼에

따뜻한 한줄기 햇살이었고,

코끝을 간질이는

산들바람 같은 존재였다.


나의 아내와 나의 아기는,

희망을 놓아버린 나에게

삶의 이유였고,

희망이었고,

그와 동시에 가시였다.


나의 아기의 환한 웃음은,

우울증과 절망이라는

거대하고 음침한 수렁으로 침몰해 가던 나를

다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야 할

아빠라는 존재가

무기력하게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환하게 웃고만 있는 우리 아기.


그 웃음을 지키기 위해,

나를 계속 끌고 가는 어둠과 절망에서 몸을 돌려,

희미한 빛을 향해

더듬더듬 기어가기 시작했다.


재활


유튜브와 각종 포탈에서

‘재활’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건강했을 때에는 전혀 몰랐던 세계가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일어나고, 쓰러지고,

또 일어나고, 또 쓰러지고…


그들의 사연을 읽고, 보고, 또 들으며

울기도 했고,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을 얻기도 했다.


나의 글 역시

지쳐 쓰러져 가는 누군가,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누군가에게

치유와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울면서 결심했다.


올해 안으로는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올해 안으로는

우리 아기를

내 두 팔로 꼬옥 안아 보고야 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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