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다니는 만학도의 우여곡절 이야기
내가 다니는 도서관은 남편이 다니는 주립대학의 메인 도서관이다. 나도 한때 이 학교의 학생이었던 적이 있기에 그때부터 지금껏 햇수로 6년째 발도장을 찍고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조금 먼 지역에 살기에, 학교 도서관까지는 우리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적어도 15분은 가야 한다.
사실 집 근처에도 공공 도서관이 있긴 하지만 굳이 대학교 도서관에 가는 이유가 있다.
일단 이용 시간이 길다. 집 근처 공공 도서관은 저녁 8시면 닫지만, 대학 도서관은 밤 12시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오후 시간에 공부를 하기 때문에 8시 이후까지 도서관에 머물 때가 종종 있다.
공공 도서관은 아무래도 공부하는 사람보다는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 위주이다. 특히 스토리 타임 등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이용할 이벤트들이 많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물론 공부를 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장시간 한자리에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또 공공 도서관에서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거나 전화 통화를 해도 괜찮다. 그렇기 때문에 소음에 취약하다. 물론 스터디룸이 있는 곳도 있지만 한 번도 사용해보진 않았다.
규모 또한 대학 도서관이 훨씬 크다. 이런 개방감이 주는 안도감이 분명 있다. 집 주변의 단층짜리 공공 도서관보다는 대학 도서관에 가서 자유롭게 자리를 바꾸어 앉을 수도 있고, 집중이 필요할 때에는 콰이어트 존을 찾을 수도 있다.
도서관을 오래 다니니까 가끔은 어떤 사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대학의 프로그램에 등록해 다니던 시절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석사 프로그램 학생이었는데, 그래서 도서관에 계속 붙어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그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친구를 통해 한 두 번 만난 사람 치고는 너무 친근하게 나를 대했다. 뭔가 아직 나는 그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이미 내 버블 안을 침범하는 느낌이었다.
도서관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다짜고짜 어떤 맥락 없이 같이 영화를 보자, 같이 어디를 가자, 그러면 당장 지금 날짜와 시간을 정하자 이렇게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얼버무리면서 자리를 떴고, 그런 일이 한두 번 계속되자 도서관 가는 게 무서워졌다.
어디든 그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까 봐 한동안 도서관 말고 다른 강의실을 빌려 공부를 하곤 했다.
그렇게 한동안 도서관 대신 수업이 없는 강의실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도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빈 교실에서 공부를 하곤 한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남편과 함께 빈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박사 과정이기 때문에 본인의 사무실이 있지만, 나와 같이 있을 때에는 도서관이나 빈 강의실에서 함께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교직원이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타 전공 교수였다.) 강의실 밖에서 우리가 있는 강의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강의실은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갑자기 공부를 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도촬을 당한 것이 되었다.
그 사람이 사진을 찍고 황급히 가길래 남편이 그 사람을 따라갔다. 나는 강의실에 남아 벙 쪄서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을 하려고 했다. 남편은 그 사람을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우리가 빈 강의실 (그것도 유리로 모든 게 다 보이는)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수상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것이고, 이것을 학교 경찰에 리포트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본인이 해당 건물의 박사과정 학생임을 밝히고 부당하게 찍힌 사진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남편 또한 당신이 갑자기 도촬 한 것을 학교 경찰에 리포트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자기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하고 도망을 쳤다.
남편은 극도의 긴장감에 부들부들 떨며 강의실로 되돌아왔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 이 사건에 대해 계속 곱씹었다. 우리는 그날 밤 학교 경찰과 학장에게 이 사건을 제보했다.
결국 그 사람이 같은 건물을 쓰는 타 과 교수로 밝혀졌고, 학교 경찰이 찾아가 우리의 사진을 지우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대신 사진을 지우는 건 그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에 강제로 지우게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많은 상심을 했다. 이것은 우리가 당한 인종차별이었고, 속 시원한 사이다 결론이 있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빈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
다시 나는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은 거의 혼자 도서관에 다녔다.
하루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학생이 다가와서 역시 도촬을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본인과 함께 찍는 셀카에 나를 함께 찍었다.
이전에 겪은 일이 있기에 나는 그 학생에게 쏘아붙였다. 왜 나를 찍느냐고. 딱 봐도 신입생 티가 줄줄 나는 학생이 쭈뼛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지금 학과 오리엔테이션 중에 scavenger hunt를 하고 있는데, 공부하는 사람과 셀카 찍는 것이 미션이라 나를 담아 셀카를 찍었다고.
말을 듣고 보니까 그때와는 다른 상황에 한숨이 푹 났다. 그리고서는 그래 알겠다며, 허가를 해 주곤 학생을 돌려보냈다.
그 이후로 몇 번 그런 식의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도 그 학생 외의 다른 학생들은 사진을 찍기 전 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고, 그래서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요즘 나는 도서관에서 성경 모임 전도를 꾸준히 받고 있다.
구석에서 항상 에어팟을 끼고 인상을 푹 구기며 공부하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흔치 않다. 요즘 나에게 가장 자주 말을 거는 사람들은 Bible study를 하자고 말을 건네는 두 자매들이다.
그 사람들이 다가오면 나는 이어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데, 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그들을 볼 때까지 절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에 살 때도 도를 아십니까 등 어떠한 종교 권유도 단칼에 내쳤던 나이기에 여기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다. 특히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지도 못하는 와중에 덜컥 성경 공부를 같이 하자는 사람들이 탐탁지 않게 느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처음엔 정중하게 그들의 말을 자르며 내가 지금 좀 바쁘거든 하고 말했다. 그 말을 하기까지 자매들은 약 5분간 나에게 계속 본인들의 성경 모임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래도 말을 하니 가 주었다.
다른 날에도 그녀들은 내가 분명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와서 또 묻는다.
우리 저번에 봤었지? 하는 친근한 말을 곁들이며, 네가 혹시 마음이 바뀌었을까 해서.라고 말을 건넨다.
나도 질세라 눈빛으로 응 제발 가줘. 를 보내며 응 난 관심이 없어. 하고 다시 이어폰을 낀다. 제발 이쯤 했으면 이제 알아듣고 나에게 아는 체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아마도 내년까지 쭈욱 이어질 나의 도서관 라이프에 대해 한번 뒤돌아 보는 글을 적게 되었는데,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언젠가 이 도서관에서의 하루를 졸업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또 열심히 달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