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2022년에 이태리 볼로냐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피렌체에서 2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도착한 볼로냐는 제법 대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시장에서 파는 각종 살라미와 햄이 코너마다 눈길을 사라 잡았고, 골목마다 와인과 포카치아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피렌체처럼 아기자기한 맛은 없지만, 그래도 관광객보다는 진짜 이태리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미식의 도시였다.
이름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볼로냐는 볼로네제 소스의 원조격인 곳이다. 볼로냐에 왔으면 반드시 볼로네제 파스타, 볼로네제 소스가 들어간 라자냐를 먹는 것이 진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볼로네제 소스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피하고, 살라미와 햄 그리고 치즈가 포카치아 빵 사이에 끼워진 이태리식 샌드위치를 더 즐겼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저주받은 위장 탓이다. 볼로네제 소스나 이태리 라구 소스는 고기의 묵짐함이 매력이다. 그런 탓에 언제나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으면 그다음 끼니는 건너뛰어야 할 정도로 늘 배가 무겁고 소화불량을 겪어야만 했다. 몇 번의 볼로네제 소화불량 이슈를 몸소 학습하고, 과감하게 볼로냐에서 원조 '볼로네제'는 패스했다.
두바이에 돌아와서도 제아무리 유명한 이태리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메뉴에 '라구 소스', '볼로네제'라는 단어가 있으면 매번 피해 가는 음식이었다.
그러던 중 2025년 새해를 맞아 뭔가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그 도전은 바로 '볼로네제'였다.
볼로네제 소스를 만드는 레시피는 인터넷 검색하면 넘쳐난다. 검색창에 뜬 가장 첫 번째 레시피에서 대강의 재료를 눈으로 스캔한 후, 필요한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만, 모든 재료를 굳이 레시피대로 주문하지는 않았다. 요리할 때 난 늘 나만의 방법으로 머리에 맛을 먼저 구성해 본다. 내 머릿속의 구성에 따르면 그 많은 양의 지방이 들어간 고기와 각종 향신료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빠르게 셀러리, 당근, 애호박, 토마토, 토마토 퓨레, 양파, 마늘, 지방 함량이 적은 간 소고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6가지 재료인 셀러리, 당근, 애호박, 토마토, 양파, 고기를 모두 1대1 비율로 준비했다. 볼로네제 소스는 고기가 메인인데 결국은 야채가 메인이 되어 버렸지만, 이건 모두 내 계산에서 나왔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재료는 올리브유다. 언젠가 다음에 다시 진지하게 올리브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하겠지만, 좋은 올리브유는 이태리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 나의 야채 가득 볼로네제 소스 조차.
손질한 재료에 토마토 퓨레를 넣고, 야채에서 나온 채수와 함께 뭉근하게 끓여냈다. 신선한 토마토 향은 그 어떤 디퓨져보다 기분을 좋게 한다.
마지막으로 치즈를 넣고 한소꿈 끓여낸 볼로네제 소스를 떠서 먹어봤다. '유레카'
난 이제 볼로네제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채수로 만들어낸 국물은 그 어떤 육수보다 깔끔하고 깊은맛을 냈다. 인공의 맛이 가미되지 않은 홈메이드 소스를 만들고 나니, 문득 내가 잘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로 평일에는 거의 요리다운 요리를 하지 못하지만, 주말에 하루 정도 재료 다지기부터 감미료 도움없이 순수한 요리를 만들고, 그 요리가 심지어 내 입에 맞을때 오는 만족감과 행복은 사실 말로도 다 표현할수 없다.
기쁜 마음을 안고 뉴욕에서 줄서서 먹는다는 그 치프리아니 식당 이름을 걸고 공장에서 찍어낸 파스타를 삶고, 볼로네제 소스와 치즈를 얹어 남편과 함께 주말 늦은 점심을 즐겼다.
볼로네제 소스를 만들기 위해 야채를 썰면서 명상 효과를 봤고, 소스를 끓이고 기다리면서 지난 이태리 여행을 추억하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면서 '나 잘 살고 있네' 라고 자기만족에 취할수 있던.. 이것이야말로 볼로네제 소스 마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