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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Jan 02. 2024

백마리 개, 온전한 삶 몇 가지

25. 가정견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개의 삶을 지켜보는 일은 특별하다. 개를 키우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다. 사람에게 맞춰 살아가는 개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다. 반대로 사람에게 맞출 필요가 없는 개에게도 그들만의 온전한 삶이 있다.




노견이 안전한 이유


자신을 훈련사라고 소개한 이가 있었다. 훈련이 필요한 유기견이 있는지를 묻더라. 개가 개와 살아가는데 필요한 훈련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이 키우는 개와 사람을 곁에 둔 개가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훈련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도 대인관계술을 완벽하게 학습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모자라면 상대방이 그만큼 이해해 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개가 개를 만날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덩치 크고 힘 좋은 개들 틈 사이에 노견들이 지낸다. 대형견이기에 싸우거나 물리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스레 던지는 말들이 많다. 우리가 개들을 짐승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은 사람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누군가 우리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특히 대형견들이 수십 마리 모여 있는 유기견숲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많다.


덩치 크고 힘 좋은 개들은 괴롭힐 상대를 찾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어울릴 상대를 찾는다. 사람도 각종 스포츠를 통해 정해진 규칙 안에서 온 힘을 다해 덤빈다. 모르는 이에게는 공놀이이지만, 경험한 이에게 축구는 격투기와 다를 바 없다. 개도 그런 일을 함께 할 상대를 찾을 뿐이다. 그러니 노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서열은 매일 달라진다.


수십 마리 개들의 서열을 묻는 이가 많다. 사람처럼 1번부터 끝 번호까지 일렬로 줄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세상에 사람만 살아가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의 행동 양식이 세상의 기준이라 믿는 듯하다. 초중고 교육 과정에서도 이런 부분은 한 줄도 배운 적 없었음에도 말이다.


개들 사이에 서열은 있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목적과 순서와는 다르다. 우선 강한 개부터 약한 개까지 나열하는 것이 서열의 목적이 아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다. 개들도 그렇다. 주변에 피해를 줄 만큼 날뛰는 개들은 다른 개들에게 외면받는다. 친구를 사귀고 놀이를 시작하려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서열은 곧 연륜인 셈이다.


친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중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 찾아주시는 봉사자 분들은 그날의 상황만으로 1년을 짐작한다. 움츠린 개와 사나운 개가 보였다면 1년 내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움츠린 개의 안부를 1년 동안 묻는 것이 증거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음 날이면 두 마리의 개 상황이 뒤바뀌어 있을 수 있다. 그때 움츠렸던 개는 어디에 있어요?라는 물음에 코 앞까지 달려와 매달리고 있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온전한 삶


개는 개에게서 가장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결국 사람의 편리함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의 이해심을 개에게 이해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개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찌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입양을 보내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사람과 친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상황이다.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그것을 사람이 내어주는 것의 반복이다. 사람에게 개가 필요하듯 개에게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여기서 속단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수많은 기호 중에 하나가 개인 것처럼, 개에게도 사람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에게서 얻을 것이 줄어들고, 나아가 사람을 통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면 개들의 친화력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은 독립된 존재로서 사람과 동등한 입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분을 가정에서 느끼는 것은 사실 불가능이다. 내가 가정견을 개에게 파생된 또 다른 종류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온전한 개는 가정견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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