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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Jan 03. 2024

백마리 개, 견사 문을 뜯었다.

26. 대책은 없었다.

남들이 보호소장이라고 부르는 위치에서 위신을 찾는다. 

남들이 희생이라고 부르는 일에서 적당한 보상을 찾는다.

보호소는 이를 기점으로 어려워진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자판기처럼 동전을 넣으면 물품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후원이 부족해서 보호소가 열악했던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유기견 한 마리를 구조하여 보호소에 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관여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길에서 유기견 스스로 걸음을 옮겨 보호소에 도달할리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허나 사람들은 이에 대해 과소평가한다. 유기견숲에 100마리의 개들이 있고, 여기에 관여된 사람만 300명은 족히 넘는다. 유기견을 돌보기 전에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곳이 보호소이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눈치를 주는 이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을 보호소는 따라야 하며, 그 의견이라는 것은 유기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유기견이 살아 있기만을 바란다. 정말이지 간절히 그런 유기견을 바라고 있다. 그러니 보호소에서 행복을 논하는 이들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견사의 이유이다. 어떤 일이 생기려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야만 한다. 애초에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불변하다면 어떤 사건도 일어날 리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견사를 지어 유기견을 집어넣었다.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세상과 단절된 공간을 만든 것이다. 


가로 2미터, 세로 5미터 넓이에 선풍기와 환풍기, 히터와 모기퇴치기까지 있었다. 실내와 실외 공간을 구분하고, 충분한 밥과 물을 제공하며 분기마다 깨끗한 흙으로 교체했었다. 그러나 결국 견사였다. 단절된 공간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갇혀 있다는 사실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아무리 좋아도 견사는 그런 곳이었다.


덩치 큰 한 마리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자기 머리통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깊이 파더니 무언가를 꺼내었다. 멀리서 볼 때에는 개껌 같았지만 다가가보니 돌멩이였다. 개껌처럼 생긴 돌멩이를 개껌처럼 앞발로 잡아 씹고 있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모르지 않았지만 감당하기 힘들 만큼 그랬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고 왼쪽 눈은 시야가 희미해질 정도였다. 그날 32칸의 견사 문을 다 열었다. 




대책은 없었다. 문을 열어도 쉽사리 나오지 못하는 녀석과 한 걸음에 달려 나오는 녀석들로 뒤섞여 난리가 되었다. 싸움은 당연히 일어났고 크고 작은 혈흔들이 곳곳에 뿌려졌다. 다행이라면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는 정도이다. 아니, 그때는 개보다 나의 걱정이 더 컸었다. 이러나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사람의 의지를 믿지 않는다. 행여나 나의 불편함으로 견사 문을 걸어 잠글 것을 대비하여 견사 문을 다 뜯어 냈다. 여전히 대책은 없었다. 당장 내가 숨을 쉬는 일이 급했고, 32칸의 견사를 구분하던 선들이 사라질수록 호흡은 안정을 찾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120마리는 5개로 나누어진 공간을 끊임없이 옮겨 다녔다. 여기서 잘 지내지 못하면 저기 울타리로 옮기는 식이었다. 그렇게 옮겨간 유기견 때문에 못 지내는 녀석이 있으면 그 녀석을 다시 옮겼다. 견사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을 찾아주는 과정이 그랬다. 친구. 개들은 사람이 아닌 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눈앞에서 다투며 피를 흘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심하게 물린 개가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놓지 않았다. 이를 두려워하고 이를 의심한다면 다시 이들을 가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때로는 합리화하며 짐승 같은 일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단순했다. 그들은 견사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미쳐있었고, 제정신을 찾는 동안 일어나는 해프닝에 불과했다. 다 지나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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