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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Dec 25. 2020

다 해주는 남자

한 겹 더 들춰보는 연애 이야기 (2)

한 여자가 자기가 사귀는 남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남자? 잘 생기진 않았어. 돈도 잘 못 벌고... 그런데 나한테는 너무 잘해. 내가 지치고 힘들 땐 언제든 달려와서 밥도 해주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해주고 아픈 곳도 주물러 주고... 내가 친구들하고 늦게까지 술 마시다 전화하면 한 번도 거절 않고 나 있는 곳까지 와서 차로 데려다줘. 얼마 전 이사했을 때는 혼자서 짐 정리 다 해주고 냉장고 청소까지 해줬어."


구체적인 사례만 다를 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여자를 나는 살면서 여럿 만나보았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여자가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남자는 '착하다'라고 칭찬받고 여자는 '복이 많다'라고 부러움을 받는다.  

그런데 나는 그럴 마다 왠지 모르게 불쾌하고 기분이 찜찜했다. 여자가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다 못해 더러워진 운동화까지 손수 빨아준다는 남자 얘기를 들었을 땐 일종의 모욕감까지 느껴졌다.


'서로 사귀는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준다는 데 왜 여자인 내가 기분이 나쁘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혹시 내가 그 여자를 부러워하는 건가?'


더 분석해보기 위해, 비슷한 이야기를 남자가 한다고 가정해 보았다.


"내 여친? 그렇게 예쁘진 않아. 집안도 그저 그렇고 돈도 별로 없어. 그런데 나한테 참 잘해.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와서 밥해주고 설거지 청소 다 해주고 안마도 해줘. 술 마시고 있다가 집에 갈 때 전화하면 아무리 늦어도 차 갖고 와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얼마 전에 이사할 때는 하루 종일 이삿짐 정리 다 해주고 냉장고 청소까지 싹 해놓더라구."


비로소 명확해진다. 내가 보기에 이 남자는 이기적이고 한심한 놈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자기에게 뭔가를 '해 주는 것'으로서 상대의 가치를 평가하다니 이렇게 천박할 데가!    

그렇다면 같은 태도인데 여자의 경우엔 왜 단번에 '이기적이고 한심하다'라고 일갈할 수 없었을까?


생각해보니 연애 관계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도 그 통념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성평등이 많이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여자가 남자보다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에 사적인 관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떠받들어주는 게 보기 좋다는 일종의 균형감각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하지만 이 통념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무섭다. '레이디 퍼스트'와 같이, 여자이기 때문에 위해 주고 대접해 줘야 한다는 오래된 관습은 여자를 존중하는 척 나약한 존재로 길들이기 위한 눈속임이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어떤 계급의 여자는 의자 하나도 제 손으로 끌어당길 줄을 몰라 남자의 도움을 받아 식탁에 앉지만 그 식탁에 음식을 나르는 다른 계급의 여자는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야만적인 관습이다. 여자란 사용되거나 보호받는 존재, 둘 중의 하나로밖에 취급하지 않던 시대의 산물이다.      


남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여자와 그것을 받는 남자의 관계가 착취적으로 보인다면 이런 시각은 정상이다. 하지만 여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남자와 그 모든 것을 받아서 누리고 있는 여자의 경우를 아름답게 보는 시각은 정상이 아니다. 세뇌당한 것이다. 만의 하나, 여자가 자신의 출중한 외모나 매력을 내세우며 '나 같은 여자와 사귀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남자가 제공하는 용역의 대가로 자신을 팔아넘기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여자든 남자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관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연애 관계에서 '뭔가를 해주는' 행위가 헌신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고도 뭔가 근사한 것을 얻고 싶은 게으름이 '사랑의 힘'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힘에 기댄다.


사람의 성인이 연애를 한다면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만나야 한다. 아주 기초적인 생존 활동을 스스로 영위할 수 없다면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추스를 일이다. 밥 해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일상의 건강관리를 혼자서 할 수 없다면 연애할 자격이 없다. 이사할 힘이 없으면 이사를 하지 말아야 하고 더러워진 운동화도 하나 제 손으로 빨 수 없다면 신지 말아야 한다. 


물론 상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뭔가를 해주고 싶고 또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류여야 한다. 서로가 지닌 삶의 다른 차원들, 각자의 고유한 방식과 색다른 스타일을 함께 경험해보면서 신선한 자극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아름답지만,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추해진다. 그게 바로 원조교제를 진정한 교제로 보지 않는 이유가 아닌가?   


사랑이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 각자 삶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수고를 감당하는 용기이다.

이러한 수고와 노력은 하기 싫으면서도 사랑의 달콤한 맛은 즐기고 싶은 게으름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지 어떤 강렬한 감정의 분출로 인한 일방적인 헌신과 원조를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여기는 착각 말이다. 아무 노력 없이 받기만 하면서, 사랑은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것이니 그래도 된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다가 점점 상대가 내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으로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 측정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쪽의 의도와 동기는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을 것이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대의 요구대로 맞춰주는 게 다른 어떤 방식보다 편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정말 사랑이 넘쳐서 해주는 기쁨에 겨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해주는 남자는 어쩌면 '착한' 남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가 해주는 모든 것을 받고만 있다면 그 여자는 '복이 많은' 사람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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