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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Jan 08. 2021

왜 그러는지 알려줄까요?

한 겹 더 들춰보는 연애 이야기 (4)

"차라리 벗고 다니지, 왜?"

말을 거칠게 하는 어떤 남자들은 자기가 사귀는 여자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나타나면 이렇게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런 막말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여자친구가 아슬아슬한 초미니 스커트를 입는다거나 윗 가슴과 어깨가 드러난 블라우스를 입는다거나 등이 깊이 파인 드레스를 입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자는 많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여자가 신체 부위를 많이 드러내는 건 남들, 특히 남자들에게 섹시하게 보이려는 의도 말고는 없다고.  

정답부터 귀뜸하자면, 아니다.


한 십년 전쯤 나는 교회 안에서 참으로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는 교회에 새로 들어온 신자들의 소그룹 성경공부의 리더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도 내가 맡은 그룹의 새 신자들이 모두 남자였다.

성경공부 모임이 있던 날, 다른 일을 보고 시간에 맞춰 교회로 갔는데 마침 내가 그날 입은 다소 과감한 미니스커트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나보다. 복장을 조신하게 하라는 충고가 돌아 돌아 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그런 지적이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 충고에 고분고분 따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 말을 내게 전해준 사람에게 깔깔대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교회 같이 안전한 곳에서 마음놓고 미니스커트를 입어야지, 늑대들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바깥 세상에서 입으란 말야?"  


여자가 남자친구와 만날 때 노출이 많은 옷을 입는다면 이런 마음일 가능성이 높다. 든든한 남자친구가 곁에 있을 때 마음놓고 그런 옷을 입어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에게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서로 반해서 사귀기로 한 사이인데 여자가 신체적 노출을 통해서까지 남자를 유혹할 꺼리가 뭐 그리 남았을까 싶다.


여자는 다양한 패션을 구사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보수적인 귀족 아가씨처럼 격식있게 차려입고 싶을 때가 있고, 히피처럼 털털하게 입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과감하고 대담한 노출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다. 아무 것도 거칠 것 없는 자유,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바로 노출의 욕구다.  


여자가 허벅지가 시원하게 드러난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는, 그런 차림으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거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을 의식하고 싶은 게 결코 아니다. 내가 어떤 복장을 하든 아무도 상관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떤 옷이든 마음껏 입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신체의 일부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가 추구한 패션의 방점은 '파격'과 '자유'에 훨씬 더 강하게 찍혀있는 것이지, '섹시'나 '에로틱'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옷을 입고 혼자 돌아녔다가는 음흉하고 저질스러운 시선에 시달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러니 남자친구와 만날 때가 기회가 된다. 과감한 노출을 해도 곁에 남자친구가 있다면 아무 놈이나 나를 힐끔거리지 못할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여자의 노출을 문제 삼아 핀잔을 주거나 비난을 한다면 일종의 배신이다. 만일 자녀가 집안에서 다 늘어진 수면바지 차림으로 있는 것을 부모가 문제 삼아 '너는 부모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기에 그런 후줄근한 복장을 하고 있는 거냐'고 혼낸다면 자녀는 얼마나 서러울까? 비슷한 서러움을 여자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남의 시선이 불편하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으면 그런 옷을 안 입으면 될 거 아니냐고?

우리가 진정 누리고 싶은 자유는 '안 할' 자유가 아니라 '할' 자유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사귀는 초반에는 긴장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뭔가를 되도록 '안 함'으로써 매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뽀얗게 화장을 해서 얼굴에 잡티를 들키지 않고, 밥 먹자마자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을 것 같으면 웃을 때도 입을 벌리지 않고, 아랫배가 부글거리더라도 방귀 소리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단계를 지나면 주근깨 투성이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가끔 칠칠치못하게 입가에 김칫국물이 묻거나 뿡- 하는 방귀소리에 같이 웃음보가 터진다 해도 서로를 향한 호감이 깨지지 않는 관계를 원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그 사람 앞에서 뭐든 '할' 자유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도 편안하고 당당해질 자유, 적어도 내가 사귀는 남자 앞에서만큼은 누리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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