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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Jan 23. 2021

잘 맞는 연애는 없다

한 겹 더 들춰보는 연애 이야기 (6)

어떤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잘 맞을 수가! 
나처럼 갤러리 구경을 좋아하고, 휴일엔 자전거 타기를 즐기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하고, 중동 음식 마니아인 데다가, 술은 맥주보다는 와인 쪽이고, 건축과 인테리어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도 일치하고,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자주 산다는 것과 심지어는 최근에 노란색이 자꾸 좋아진다는 것까지! 

나의 실제 이야기는 아니다. 지어낸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와 남자가 처음 만났을 때 동일한 취향과 관심사와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 서로 잘 '맞는다'라고 느끼게 된다
.  

"우와, 진짜요? 저도 그랬는데..."

"어머, 나도 그거 엄청 좋아하는데!"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맞장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과 기호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소위 '소울메이트'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끼리 사귀면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뭘 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낼지를 고민하거나 갈등하지 않아도 되고, 어떤 대화를 나누어도 날카로운 논쟁으로 번지지 않으며,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별 충돌 없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잘 맞는다'는 게 정말 최선일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내가 살던 곳과 매우 비슷한 우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편하고 쉽고 덜 위험하다. 

그러나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성장의 기회는 희박하며 삶의 범위는 확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얘기는 실제 경험도 없이 단지 이상적인 논리의 전개를 통해 찾아낸 그럴듯한 아포리즘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요?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요? 사사건건 생각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어떤 일에도 공감이 안 되고,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완전 딴판인 사람하고!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해요? 해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두고 봅시다!"

너무나도 맞지 않는 사람과 힘겨운 연애를 했던 끔찍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고도 남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에게도 쓰라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안 맞는 사람과의 사귐이 힘들었던 이유는 안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맞추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의 좌절감, 안 맞는 것을 속상해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엄밀히 따지고 들면 세상에 다 맞는 사람은 없다. '맞는다'는 개념에 집착하게 되면 계속 맞추어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맞는 것보다는 맞는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위대한 법칙은 모든 생명체가 만나서 이루는 상호작용을 통해 털끝만큼이라도 진화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진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체가 제각기 달라야 한다. 일본이나 유럽의 왕가에서 순수한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근친을 계속 거듭한 결과 후손들에게서 유독 낮은 지능, 못생긴 외모, 병약한 신체와 정신질환 등이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다.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다른 상반된 존재인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끌리도록 설계된 DNA는 인류를 위한 선물일진대,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일 또한 그러하다. 두 사람이 결합하여 자녀를 낳을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사귐을 통해 각자의 낯선 세계,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면서 조금씩 시야가 트이고 고여 있던 생각이 출렁이며 새로운 영역을 경험하면서 삶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내 곁에 다가온 새로운 우주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게 왜 좋을까?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혹시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었나? 어쩌면 이 방식이 더 나을지도 몰라... 등과 같이 서로에 대한 궁금증으로 끊임없이 덜컹거리며 굴러가는 과정은 딱 맞추어 결론을 내리고 '여기다!'라고 안착한 상태보다 훨씬 더 즐거울 수 있다.  


그러니 신나는 연애를 위한 조건은 '맞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아니라, '안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용기와 배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이 너무 힘든 건, 그만큼 우리 내면의 힘이 부족한 까닭이다. 나와 내 삶이 일치되지 못해 불화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런 상태에서는 맞는 사람을 만나도 힘들다. 나의 경험인데,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만의 비법 레시피도 꽤 갖고 있는 편인데 역시나 요리에 재능과 취미를 갖고 있는 남자를 만났더니, 남자가 나의 솜씨를 은근히 깔보면서 자기가 나보다 훨씬 더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맞추어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나와 나 자신이다. 남과는 맞출 수 없다. 잘 맞는 사람과의 연애? 환상일 뿐이다.  

혹시 상대에게 맞춰주려다 끝난 연애가 있었다면 손해 보았다고 억울해할 것 없다. 그 노력만큼 성장했을 것이고 그만큼 넓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믿어도 좋다. 



*사진은 연극 <그리고 또 하루>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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