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단계 : 섹시한 놀이 - 둘

by 유주얼

이제껏 보았던 영화 중에 가장 에로틱한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연인>(장 자크 아노 감독 1992)의 한 장면을 선택한다. <연인>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이공을 배경으로 가난한 백인 소녀와 부유한 중국인 남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다. 학생 신분인 15세 소녀와 약혼녀가 있는 32살의 남자, 게다가 당시 지배국의 서양인과 무시 받던 동양인의 만남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자극적이다. 신체 노출이나 성행위 표현의 수위도 상당히 높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야하다’고 느낀 장면은 노출 수위가 높은 성교 장면이 아니다.

소녀와 남자는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데, 남자는 항구에서 목적지까지 자기 승용차로 소녀를 바래다주겠다고 제안한다.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스러운 차 안 뒷좌석에 조금 떨어진 채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은 후 서로 어색하게 창밖만 바라본다. 그러나 이내 소녀가 팔 하나를 시트 위에 내려놓고 남자도 우연인 듯 팔을 내린다. 두 사람의 손은 닿을 듯 말듯 떨어져 있다. 남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소녀의 손으로 다가가고 마침내 남자의 손가락이 소녀의 새끼손가락에 닿는다. 그 순간 소녀는 감전된 듯 전율을 느끼며 눈을 감아버린다. 바로 이 장면, 두 사람의 손이 주춤주춤 가까워지다가 손가락이 닿는 최초의 순간까지가 나에게는 가장 에로틱했다.


물론 이어서 남자의 손가락이 소녀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들어가고 소녀도 남자의 손가락을 함께 움켜쥔다. 그리고 소녀가 집에 다 왔다고 말하는 순간 남자의 손은 어느새 소녀의 허벅지까지 올라와 있지만, 둘의 손가락이 처음으로 닿았던 순간에 비하면 좀 뻔하다고 할까, 감흥이 훨씬 떨어진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소녀의 호흡이 가장 빨라지고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표정이 된 것도 처음으로 손가락이 닿은 그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깟 손가락이 뭐가 대수겠는가? 살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낯선 이와 손가락이 닿는 일은 다반사다. 관건은 상황의 차이, 그리고 집중도일 것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손가락 정도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는 게 가능할까?


또다시 영화 얘긴데, <쿵푸 팬더1>에서 마지막에 주인공 포가 악당인 타이렁을 물리칠 때 이른바 ‘손가락 권법’을 사용한다. 덩치 큰 곰과 호랑이가 땅이 갈라질 정도로 서로 때려눕히고 처박고 하다가 결국은 포가 타이렁의 손가락 하나를 붙들고 살짝 비틀면서 끝장을 내버린다.


요가와 소마틱스(Somatics)를 배우기 전에는 그 장면이 그저 우스웠다. 얼마간의 감동을 섞어 웃자고 만든 애니메이션이니 그러려니 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재밌으라고 과장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은 일부분이지만 전체이기도 하다.


부분의 집합이 전체라는 생각은 우리 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한다. 부분은 전체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전체의 결말이기도 하며 전체의 함축이기도 하다.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인체의 모든 기관이 들어있다는 한의학적 해석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없다는 기초적인 사실만 온전히 깨달아도, 앞서 소개한 두 영화의 장면이 영화적 연출을 넘어서 진실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하나 더 소개할 섹시한 놀이는 ‘손가락 놀이’다. 이 손가락 놀이는 소마틱스 훈련 중 하나이기도 한데 방법은 간단하지만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우선 소마틱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사실은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한다.


소마(Soma)는 '자체적으로 인지능력과 감정을 갖고 있는 몸'을 뜻한다.

우리는 근대 서양 철학의 영향으로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고, 그래서 몸이란 정신 혹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며, 정신과 영혼이 빠져나간 몸은 물질일 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오해를 심어주고, 의지와 훈련으로써 원하는 대로 몸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몸을 혹사하며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는 몸이 진정 원하는 대로 살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몸에게 강요하고 살았는지 모른다.

몸이 힘들어하는데도 쉬지 못하게 하고, 나쁜 음식을 잔뜩 먹은 다음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내 몸이 아닌 남의 몸을 부러워하며 남의 몸처럼 되라고 내 몸을 몰아붙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하면 왜 이렇게 아프냐고 짜증을 내며 증상을 없애는 약을 먹어서 아프다는 신호 자체를 아예 차단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몸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니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몸을 하인처럼 부려 먹을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몸은 스스로 인지할 수 있고 스스로 느끼며 판단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늘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몸을 신처럼 섬겨야 한다.

실제로 몸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다.


소마는 통합되어 있다. 몸의 어느 부분도 따로 기능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한다고 할 때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몸 전체가 함께 연주한다. 발가락이나 괄약근까지도 함께 연주한다.


소마틱스에 관한 책들을 보면 소마 지성을 ‘깨운다’와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오랫동안 몸을 혹사하고 무시하다 보면 소마 지성이 죽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되살리는 방법은 사랑 뿐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본은 관심과 공감이다.


내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살아있고 활동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첫걸음이다. 걸을 때 걷는 활동에 함께 집중한다. 먹을 때 먹는 활동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누워있을 때 편안해진 몸을 함께 느낀다. 호흡할 때 숨이 어떻게 들고 나는지 바라본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수시로 집중하며 몸에 공감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전에 소개한 <뼈 명상>을 잠들기 전이나 일어났을 때 해보는 것도 매우 좋다.

또한 우리 몸의 진정한 코어인 ‘요근’에 대해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은 소마를 회복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소마틱스를 이해했다면, 손가락이 닿는 것과 온몸이 닿는 것이 다를 바 없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사랑하는 사람의 손가락 하나를 통해 존재의 소통을 시도해보자.


< 손가락 놀이 >


한 사람이 먼저 Giver(주는 사람)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이 Receiver(받는 사람)이 된다.

Receiver는 편한 자세로 앉는다. 의자에 앉았다면 무릎이 골반보다 낮아지게 하고, 바닥이라면 엉덩이 아래에 방석을 받쳐서 살짝 올려주면 척추가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려 등과 가슴이 펴질 것이다. 눈을 감고 긴장을 풀어놓는다.

Giver는 자신의 왼손바닥 위에 Receiver의 왼쪽 손목을 가볍게 올려놓는다.

Giver의 오른손으로 Receiver 왼손의 중지를 잡는다.

Giver는 오로지 Receiver의 중지 하나를 다양한 방향과 모양으로 움직인다. 좌우 상하 앞뒤로 구부리고 비틀고 굴렸다가 늘리고 밀고 당기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한다.

손가락 하나를 통로 삼아 상대와 교감하도록 집중한다.

Receiver는 Giver에게 내맡긴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인해 자신의 몸에 어떤 에너지가 전달되는지를 느낀다. 손가락의 느낌이 몸의 어디까지 도달하는가를 느껴본다.

소마가 회복된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은 몸속 깊숙한 안쪽까지 진동으로 전달된다.

Giver와 Receiver를 바꾸어서 진행한다.


개인적 경험을 얘기하자면, 나의 파트너가 내 손가락 하나를 잡고 움직일 때 마치 그의 손길이 나의 몸속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편 내가 Giver로 어떤 여성분의 손가락을 움직였을 때 그분은 의자 위에 앉아서 자기도 모르게 춤추듯이 몸을 흐느적거리기도 했다.


무조건 벗고 알몸을 비벼댄다고 해서 언제나 섹시하지는 않다. 때로는 손가락 하나로 가장 섹시한 교감을 이룰 수 있다. 처음 만나 손도 잡아보기 전이라고 상상하면서 놀이를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 영화 <연인>은 그 에로틱한 장면이 아니더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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