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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Mar 13. 2023

퇴근을 막아선 아이 vs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교사의 딜레마




선생님, 지금 상담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고등학생 된 지 일주일 밖에 안된 17살.

아직은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한 담임반 아이가 내 퇴근을 막아섰다.  

퇴근시간은 지났지만 아직 급한 업무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할 일이 쌓여있던 참이었다.

무엇보다 집에는 엄마의 퇴근 시간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딸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당연히 되지"

 



퇴근을 막아선 아이


아이는 내 책상 옆 간이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부터 떨궜다.

틈틈이 교실에서 볼 때마다 낯선 아이에게도 먼저 말을 걸어 친구로 만드는 발랄함을 엿봤는데 역시나 고등학교 생활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 무심한 듯 등만 툭툭 쓸어주었더니 곧 진정이 되었다.


무엇이 답답해서 이렇게 울었을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공부해 놓은 건 없는데 고등학생이 돼버렸어요.
원래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중학교 내내 춤만 췄어요.
댄스 학원 다니고 오디션 영상 찍고 춤연습만 했어요.
공부는 재미없고 춤은 재미있어서 그냥 매달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고 떨어지고 한 번도 오디션 영상 찍어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지쳐요.
이 길이 맞는 건가 싶고 재능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 같아요.
공부를 해보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업 시간도 알아듣기 힘들어서 답답해요.  
옆에 짝꿍은 종일 쉬는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데 보고 있으면 더 초조해요.
다들 길이 있는데 저만 막혀있어요.
도와주세요.


어지간히 불안했던 모양이다.

남들은 다 길을 정하고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갈 곳을 잃은 지금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좀 더 대화해 보니 부모님은 별거 중이시고 엄마는 직장 마치고 대학원까지 다니고 계셔서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을 이어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꾸준히 해오던 꿈을 접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실패라 여긴다.

뚜렷한 꿈 없이 그저 공부만 하는 아이들보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힘껏 매달려 본 것이 더 가치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꿈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건 실패가 아닌 대단한 용기라는 걸 모른다. 

열정을 갖고 노력한 무언가를 자신의 선택으로 내려놓고 다른 길을 찾아 나는 것이 대단히 능동적이고 용감한 행동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사 살짝 웃어보인다.


아이를 다독이고 현실적인 공부 방법들을 코칭했다.

놓친 3년의 시간을 메꿔가며 앞으로의 3년을 남보다 노력해 보내보자고 조언했다.

좋아하는 춤을 놓지 않으면서 열린 진로를 보장할 수 있는 실용무용학과 진학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막연하게 '열심히'가 아닌 구체적이고 당장 해야하는 공부들을 정리해서 계획을 만들다 보니 금세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엇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또 마음이 초조하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작년에는 초등 입학에 맞춰 1년 간 휴직을 해 온건히 아이 옆에 있어주었기에 첫 초등학교 생활은 수월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포근하게 아이들을 지도해 주셔서 방학이 싫다던 아이였다.


방학 내내 2학년 첫 등교만 기다리던 아이는 첫날부터 눈물바람이었다.  

선생님의 첫날 첫마디가 '경고를 세 번 받으면 매정하게 대할 거야' 였단다.

항상 붙어있던 엄마의 부재, 무서운 선생님, 처음 가본 방과 후 돌봄 교실까지 9살 아이는 힘들게 새 학기를 적응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종일 웅크리고 긴장하던 아이는 엄마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린다.

그러니 오후가 되면 마음이 초조해진다.

 

상담하는 내내 딸아이 전화가 걸려왔지만 받지 못했다.  

1시간 남짓 걸려 이야기를 매듭짓고 나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바빠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 많이 기다렸지. 조금만 더 기다려줘. 빨리 갈게'


도어락 버튼을 하나 누르자 마다 집 안에서 다다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목 빠지게 엄마 기다리던 우리 딸.

달려와 엄마 품에 한참을 안겨있는다.

그렇게 충전을 하고서는 이내 품안에서 재잘재잘거리며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브리핑한다.


한참 종알거리던 아이는 깜박했다며 가방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초코우유와 초코파이를 내 앞에 내밀었다.

엄마랑 같이 먹고 싶어서 급식에 나온 간식을 챙겨 왔단다.

가장 좋아하는 초코 우유라서 먹고 싶었는데, 그래도 참고 가방에 넣어 온 아이.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엄마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가 초코 우유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초코 우유를 한모금 마시며 올라오는 눈물로 같이 삼켰다.   



엄마랑 나눠먹고 싶어서 챙겨 왔다며 급식의 우유와 돌봄 교실 간식을 챙겨 온 딸



                    



대입이라는 높은 산 아래 이제 막 도착한 고딩에게도,

무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 학교 가기가 두려운 초딩에게도 새 학기는 힘겹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곁에 든든한 담임도 되고 싶고, 내 아이 곁에 더 오래 함께하고픈 엄마이고도 싶은  난 몸둥이가 하나인게 원망스럽다.


봄단풍이 산야를 덮는 시기쯤 되면 고딩도, 초딩도, 그들의 담임과 애미도 웃으며 등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학기초 힘들다. •︠ˍ•︡  

 




(제목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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