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날인데 수리 맡길 시간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까지 떠올리니 머릿속이 어지러워 이내 노여움이 차오릅니다.
아니, 멀쩡하던 핸드폰이 갑자기 왜 말썽일까요.
사실 4시간 후 있을 월요일 첫 시간 수업 준비가 미흡해서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에 일어난 터였습니다.
당장 급한 것부터 해결하기 위해 시끄러운 속을 냉수 한 컵으로 진정시키고 최대한 집중해서 일은 해봅니다.
(사실 집중은 못했어요. 생돈이 아까워서 속이 쓰렸거든요.)
겨우 일을 마치고 분주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큰 아이가 평소보다 심한 짜증을 부리며 힘들게 몸을 일으키더니 '엄마 침 삼킬 때 목이 아파'라고 합니다.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도 있는데 워킹맘의 아이는 이 정도로 학교를 쉴 수는 없습니다.
엄마 퇴근 후에 병원 가보자고 아이를 달래고 아침밥 옆에 따듯하게 데운 배즙을 놓아주는 것으로 일단 수습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담임반 아이 두 명에게 전화가 옵니다.
(액정은 나갔으나 외부 액정이 살아 있어 전화는 받을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요)
하나는 생리 결석을 쓰겠다는 통보(?)였고, 하나는 기침이 나와서 병원 진료 후 등교하겠다는 통보(?)였습니다.
초등학생도 학교 빠지지 않기 위해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우리 반 고등학생의 꾀병을 듣고 있자니 부아가 납니다.
(생리 결석을 쓰겠다던 아이는 말도 안되는 생리주기를 갖고 있습니다. 수행평가가 있거나 소방훈련이 있는 날에 생리를 맞추는 능력자입니다. 기침을 한다던 아이는 4교시 끝날 무렵 들어와서 야무지게 급식을 드셨고 이후 5교시 수업에 기침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수업 안빠지고 방과후에 병원을 들려도 충분했을 겁니다.)
아직 출근을 하지도 않았는데 머리 위에 걱정 구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돈걱정구름, 시간걱정구름, 아들걱정구름입니다
걱정 구름을 이고 출근하는 모습을 따님이 그려줬네요.
그래도 출근했습니다.
출근해서 가장 먼저 노트북을 켜고 메신저를 확인합니다.
새로운 업무가 있는지,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사항 중 놓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뜻밖에 월요일 첫 메시지는 같은 교무실 선생님의 모친상 소식이었습니다.
부고 알림. ○○○ 선생님 모친상.
부장님께 여쭤보니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을 받으셨대요.
선생님 나이가 저보다 한참 아래니 돌아가신 어머님 나이도 아직 창창하실 텐데 어찌 된 영문일까 싶어 황망하더군요.
제 자리 뒤편, 오늘은 비어있는 그 선생님의 책상을 보고 있으니 지금 그이가 느끼고 있을 헛헛함이 전해지는 것 같아 쉽게 조회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교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벽부터 저를 괴롭혔던 자잘했던 마음의 파편들이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척했지만 실은 그 커다른 슬픔으로 내 괴로움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알게 돼서 안도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 됨됨이가 고작 요정도 입니다.
씁쓸하면서도 아침 내내 머리 위에 이고 있던 걱정 구름이 사라지니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조석으로 바람이 차가워졌습니다.
아직 낮에 볕은 뜨겁지만 분명 공기는 가을입니다.
여름 내 성장에 힘쓰던 들판은 이제 단단하게 영글어갑니다.
누가 와서 시시 때때로 알려주는 것도 아닌데 때되면 알아서 씨앗을 나와 싹을 내고 자라서 익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