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른쪽이 더 크세요?
뭐라는 거야.
비교를 논할 가치가 있으려나.
태어나 지금까지 유의미한 성장이 없던 가슴이다.
브래지어의 쓸모는 그저 가슴의 위치를 표시하는 용도에서 끝이었다.
출산 후 모유 수유라는 필요에 의해 잠시 가슴다웠던 시절도 있었다만 소임을 다한 이후로는 전보다 더 시무룩해진 녀석이다.
옷을 입어버리면 더욱 존재감이 없어져버리곤 했다.
그러다 오늘, 걸친 것 없는 상태에서 내 가슴은 굴욕을 맛봤다.
쩝.
건강검진을 받는 날.
2년에 한 번이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 건가 싶다.
건강을 위해 분명 필요한 과정인데 막상 가려면 시간도 비워야 하고 예약도 해야 하고 번잡스럽다.
독촉 문자를 몇 번을 받고서야 예약을 했다.
빈 속에 물도 못 마시고 건강검진센터에 들어섰다.
기본적인 피검사, 소변검사, 시력검사 등을 마치고 다음 차례는 유방암 검사.
유방암 검진은 유방촬영술로 한다.
양쪽 유방을 두 번에 걸쳐 자세를 바꿔 촬영한다.
유방을 플라스틱 판에 올려놓고 아래위에서 납작하게 눌러놓은 상태에서(이때 상당한 통증이 수반된다.) 방사선을 노출시켜 촬영하는 것이다.
문제는 촬영을 위해 올려놓을 만한 것, 가슴이 없는 점에 있다.
촬영을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가슴을 판때기에 올려놓으려고 하는데 뜻대로 안 되는 듯했다.
뭐 잡히는 게 있어야 말이지.
( •︠ˍ•︡ )
겨우 쓸어 모아 올려놓으면 원래 탄력 없는 녀석들이 굳이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니 애쓰는 간호사에게 민망하고 미안한 상황.
아니, 미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 열심히 성장할 때 제 몫을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일말의 책임감은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니, 미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 열심히 성장할 때 제 몫을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일말의 책임감은 느끼는 순간이었다.
시선을 반대 방향을 보고 있으라는 덕에 굴욕적인 상황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는 않아도 되니 그나마 외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베테랑 간호사 선생님은 보잘것없는 녀석들을 잘 달래서 수줍게 기계에 올리고 촬영을 해냈다.
프로다.
대단해.
덕분에 첫 번째 자세는 양쪽 다 성공.
두 번째는 기계를 대각선으로 돌려서 촬영한다.
오른쪽은 한 번에 성공했는데 왼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얼마 안 되는 가슴을 모아 기계에 올리다는 것이 겨드랑이 살들이 같이 쓸려간 모양이다.
촬영한 것을 확인하더니 재촬영을 해야 한단다.
가슴인가 싶어 합류시켰던 겨드랑이 살들을 제하고 다시 자세를 잡아보려 하는데 양이 적어 영~ 탐탁지 않아 하는 간호사 쌤.
그녀가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는 동안 나는 상체를 노출한 채 그녀가 내 몸을 조물거리도록 맥없이 맡기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애쓰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수치스러움은 내 몫이다.
이때 훅 들어온 질문.
원래 오른쪽이 더 크세요?
가슴이 너무 빈약해 힘들다는 것을 상처받지 않도록 돌려 말하는 전문가의 배려.
왼쪽보다 오른쪽이 좀 더 가슴다웠던 건가.
그것들이 크기를 비교할만한 값어치가 있었던가.
애초에 비교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질문을 받았으니 나도 모르게 골똘히 생각하는 건 뭐람.
그러는 사이 재촬영에 성공해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건강검진결과서는 3주에 우편으로 도착한다.
혈압 정상.
시력 1.2 (이 나이에 참으로 건강한 눈이 아닐 수 없다.)
운동 권고 정도가 적혀있겠지?
짝가슴이라고 쓰여있지는 않을게다.
설마
•́ ̯•。
굴욕감을 씻어내 줄 하이볼 한잔 했습니다.